슬픔 / 임승빈
어디선가 획 하고 잎 하나 진다. 가만, 은사시나무 잎이다. 문득 올려
다 본 하늘 한쪽이 그 은사시 잎 모양이다. 이번엔 소리도 없이 떡갈나무
잎이 팔랑거린다. 그래서 하늘은 또 그렇게 팔랑이는 떡갈나무 잎이다.
저만큼 산벚나무 붉은 잎들이 무수히 빗금을 그으며 떨어져 내린다. 그
래서 하늘은 또 그렇게 끝 간 데 없이 쓸리는 붉은 물결.
잎이 질 때마다 하늘은 꼭 그런 나뭇잎 모양을 하고, 잎 진 하늘 속 비
로소 보이는 나무들의 미끈미끈한 아랫도리. 그렇게 드러난 아랫도리에
슬픔이 미끈미끈 젖어 흐른다.
그렇구나, 나무들은 아랫도리에 빛나는 슬픔을 감추고 있었구나. 그
렇게 가려진 슬픔으로 제 키를 세우고 있었구나.
언제나 하늘이 산 가득한 이유
거기 있었다.
'느낌이 있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염 / 김청수 (0) | 2015.01.09 |
---|---|
저녁의 게임 / 황인찬 (0) | 2014.11.29 |
호야네 말 / 이시영 (0) | 2014.11.29 |
다락방 / 이수익 (0) | 2014.11.29 |
당신에 관한 명상 / 이상옥 (0) | 2014.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