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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있는 시

자멸의 사랑/강정

by 바닷가소나무 2011. 7. 17.

자멸의 사랑/강정

  

 

  조용히 내 말에서 귀를 거두시오

  내 말이 불현듯 낙뢰를 타고 창가에 부서질 때,

  그 부서지는 시간의 피톨들이

  정녕 당신이 들어야 할 소리인지도 모르오

 

  내 말을 믿지 마시오

  차라리 내가 사레들려 헛기침을 하거나

  당신이 애써 감추려는 피부의 작은 돌기를 도적마냥 쳐다볼 때면

  그제서야 당신은 손톱만큼만 나를 믿어도 괜찮소

  나는 거짓을 그리는 우매한 소경이라오

 

  내가 본 것들을 믿지 마시고 내가 그린 것은 더욱 믿지 마시오

  당신이 나를 바라볼 때 나는 만 겹의 얼굴 뒤에

  불온한 얼룩으로 묻은 시간의 고름일 뿐이오

  나를 믿느니 속옷에 묻은 당신의 부끄러운 땀 냄새나 오래 바라보

시오

 

  내 얼굴이 문득, 꿈에 본 당신의 속마음으로 읽힌다면

  만 권의 책을 덮고 오래 켜둔 불빛을 잠그시오

  어둠 속에서 만개하는 그림들이 지평선을 바꾸는 순간,

  당신은 어디에도 없는 나의 유일한 그림자라오

 

  그렇지 않겠소?

  어찌해도 당신은 내게 속아 넘어갈 뿐,

  대체로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용서하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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