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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있는 시

캄캄한 돌 / 나희덕

by 바닷가소나무 2011. 7. 16.

 

캄캄한 돌 / 나희덕

 

 메카의 검은 돌은
원래 흰색이었다고 해요

아담과 이브가 낙원에서 쫓겨나면서
손에 움켜쥐고 나온 돌,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와
입 맞추고 만지는 동안
고통을 빨아들여 캄캄한 돌이 되었다죠

내게도 검은 돌 하나 있어요
그 돌은 한때 물속에서 아름다웠지요

오래전 해변을 떠나며
무심코 주머니에 넣고 온 돌,
그러나 그토록 빨리 빛바랠 줄은 몰랐어요
내가 고통을 견디는 동안
고통이 나를 견디는 동안
돌 또한 나를 말없이 견디어주었지요

어느날부터인가 돌을 만지는 게 두려워졌어요
돌을 열 수도, 닳게 할 수도 없으면서
돌의 본성이 너무 깊이 박힌 손,
만지는 것마다 돌이 되어버릴 것 같았지요

빛바랜 돌을 바라보며 떠올려봐요
돌이 물속에서 빛나던 때를
검은 물기 위에 어룽거리던 무지개를

그 찰랑거리던 아침이 내게도 있었겠지요
메카의 검은 돌이
오래전 흰색이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