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송터널에서 길을 잃다 / 김동헌
영월에서 태백으로
고도가 높아질수록
땅과 하늘은 자주 만나고
산 넘지 못하는 길
숲으로 파고드는 곳에 반송터널이 있다.
성묘를 마치고 구래 가는 길 아버지, 미쳐 떨쳐내지 못한 아픔 하나가 유리창에 반짝거려요 반송터널, 무중력의 그곳에서 내 정신은 갑자기 방향을 잃고 땅 속 어디선가 금빛 출렁거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요 터널 안에서 수천수만의 생각이 모스 부호로 떠다니고, 당신께 반송될 수 있다면 앞으로 다가오는 시간들을 돌려 세우고 싶어요.
아버지의 땀과 눈물 스며든 길
비틀거리고 넘어지면서 부자가 함께 넘던 길
석항으로 녹전으로 황기 천궁 팔러 다니던
솔고개로 버들치로 뚫린 이 길
이제 당신께만 갈 수 없는 눈 먼 길이다.
신호가 와요 머릿속에서 불빛이 명멸하고 제가 아버지께 반송되는지 아, 그림이 잡혀요 음성이 들려요 무중력의 터널, 오렌지 빛 형광등 아래 당신이 보일듯해요 자 전송을 시작해요 아버지, 뭐라고요 안 보인다고요? 눈을 감고 천천히 돌아갈게요, 제가 보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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