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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있는 시

돈암동 시장 겨울 풍경 / 최동호

by 바닷가소나무 2011. 7. 14.

 

돈암동 시장 겨울 풍경 / 최동호

 

 

폭설과 긴 가뭄 끝에 내리는 겨울비

좌판 위애 지겹게

놓여 있던 얼음 더미에서 생선 피 뿌옇게

녹아내릴고 떡 가게의 처마에 매달린

마른 호박 줄기들이

용수철처럼 비틀어지다가 겨우

한숨 돌리는 시간 눅눅하다

 

어물가게 아주머니는 졸음을 떨치지 못해

두꺼운 담요 속으로

하품하며 달팽이 곰처럼 파고들고

수족관의 개불이 허옇게

불어서 힘없이 해초처럼 하늘거리는 시간

차일로 쳐진 비닐이 깅울어

불룩하던 물주머니에서 주루룩 물줄기가 떨어진다

 

좌판 위의 생태가 풀린 눈을

껌벅이고 봄을 향해 돌아눕자 생선 비린내가

훅 끼쳐와 나도 모르게

발길을 빨리 내딛는 비 내리는

경울 돈암동 시장 질퍽거리는 골목길

상한 생선 내장을

길바닥에 풀어놓은 것처럼 구불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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