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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있는 시

어느 목수의 집짓는 이야기 / 황학주

by 바닷가소나무 2011. 7. 12.

 

어느 목수의 집짓는 이야기 / 황학주


기적처럼 바다 가까운 데 있는 집을 생각하며 살았다
순서가 없는 일이었다
집터가 없을 때에 내 주머니에 있는 집
설계도를 본 사람 없어도
집 한 채가 통째로 뜨는 창은
미리 완성되어 수면에 반짝였다

나무 야생화 돌들을 먼저 심어
밤바다 소금별들과 무선 전화를 개통해 두고
허가 받지 않은 채 파도소리를 등기했다
하루는 곰곰이 생각하다
출입문 낼 허공 옆 수국 심을 허공에게
지분을 떼 주었다

제 안의 어둠에 바짝 붙은 길고 긴 해안선을 타고
다음 항구까지 갈 수 있는 집의 도면이 고립에게서 나왔기에
섬들을 다치지 않게 거실 안으로 들이는 공법은
외로움에게서 배웠다
물 위로 밤이 오가는 시간 내내
지면에 닿지 않고 서성이는 물새들과
파도의 도서관에 대해 이야기했다
개가식으로 정렬된 푸르고 흰 책등이
마을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어줄 수 있을까

바다 코앞이지만 바다의 일부를 살짝 가려둘 정도로
주인이 바다를 좋아하니
바다도 집을 좋아해 줄 수 있도록
자연으로 짓는 게 기본

순서를 생각하면 순서가 없고
준비해서 지으려면 준비가 없는
넓고 넓은 바닷가
현관문이 아직 먼데 신발을 벗고

맨발인 마음으로 들어가는 집,
내 집터는 언제나 당신의 바닷가에 있었다

서정시학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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