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산두리(山斗里 )
안좌면 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6㎞ 떨어져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본래 지도군 안창면 지역으로써 후동산 북쪽이 되므로 산두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탄동리와 여흘리의 각 일부지역을 합하여 산두리라 해서 무안군 안창면에 편입되었다. 1917년 안좌면에 편입되고 1969년에 신안군에 편입되었다.
총 면적 2.28㎢이다.
◦마을형성
口傳에 의하면 黃氏가 맨 처음 마을을 설립하였다고 傳하며 그 후 1800年경(정조대) 全州李氏 李英得이 安佐 小尺에서 이곳으로 이주한 후 마을을 형성하였다.
◦지명유래
마을이 산밑에 위치하고 있으며 地形이 말(斗)의 形局처럼 생겼다 하여 山斗라 하였다.
◦전 설
벼락바우 : 마을 동북쪽에 있는 바위로써 제방(뚝)을 쌓으면 터진곤 하여 도승을 찾아 방법을 물었다. 사람을 산 채로 묻고 뚝을 쌓으면 터지지 않으리라 하여 사람을 구하던 중 때마침 거지가 어린 자식을 데리고 동량질을 왔으므로 그에게 한바구니의 돈을 주고 그녀의 자식을 사서 묻고 그 위에 뚝을 쌓으니 터진일이 없었다. 그때 거지가 돌아가다가 이 바위 위에 앉아 받은 돈을 세고 있다가 갑자기 벼락을 맞아 죽었다 하여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다. 그뒤 해마다 농부들이 음력 6월 1일에 억울하게 죽은 거지의 넋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내고 풍년을 빈다.
◦배출인물
- 崔公仁(1930~) 本貫 慶州崔氏로 現 文泰高等學校 校監
출처 : 석인이랑 희윤이랑
글쓴이 : 마누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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