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똥 / 복효근
똥이라 부르지 말자
그 넓은 바다에서
집채만한 고래와 상어와
때깔도 좋은 열대어들 사이에서
주눅들어 이리저리 눈치보며
똥 빠지게 피해다녔으니 똥인들 남아 있겠느냐
게다가 그물에 걸리어 세상 버틸 적에 똥마저 버텼을 터이니
못처럼 짧게 야윈 몸속에
딱히 이것을 똥이라 하지 말자
바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늘 잡아먹은 적 없이 잡아먹혀서
어느 목숨에 빚진 적도 없으니
똥이라 해서 구리겠느냐
국물 우려낼 땐 이것을 발라내지도 않고
통째로 물어 넣으면서
멸치도 생선이냐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적마다 까맣게 타들어갔을
목숨 가진 것의 배알이다
배알도 없는 놈이라면
그 똥이라고 부르는 그것을 뜯어낸 자리
길고 가느다란 한 줄기 뼈가 있겠느냐
밸도 없이 배알도 없이 속도 창시도 없이
똥만 그득한 세상을 향하여
그래도 멸치는 뼈대 있는 집안이라고
등뼈 곧추세우며
누누천년 지켜온 배알이다
'느낌이 있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뻘 / 최서림 (0) | 2015.02.17 |
---|---|
퉁* / 송수권 (0) | 2015.02.17 |
가을을 기다랄수있는 자격/ 정일근 (0) | 2015.02.12 |
<201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0) | 2015.02.10 |
김포 하성 운호가든집에서/고형렬 (0) | 2015.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