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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있는 시

멸치똥

by 바닷가소나무 2015. 2. 15.

멸치똥 / 복효근


      똥이라 부르지 말자
      그 넓은 바다에서
      집채만한 고래와 상어와
      때깔도 좋은 열대어들 사이에서
      주눅들어 이리저리 눈치보며
      똥 빠지게 피해다녔으니 똥인들 남아 있겠느냐
      게다가 그물에 걸리어 세상 버틸 적에 똥마저 버텼을 터이니
      못처럼 짧게 야윈 몸속에
      딱히 이것을 똥이라 하지 말자
      바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늘 잡아먹은 적 없이 잡아먹혀서
      어느 목숨에 빚진 적도 없으니
      똥이라 해서 구리겠느냐
      국물 우려낼 땐 이것을 발라내지도 않고
      통째로 물어 넣으면서
      멸치도 생선이냐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적마다 까맣게 타들어갔을
      목숨 가진 것의 배알이다
      배알도 없는 놈이라면
      그 똥이라고 부르는 그것을 뜯어낸 자리
      길고 가느다란 한 줄기 뼈가 있겠느냐
      밸도 없이 배알도 없이 속도 창시도 없이
      똥만 그득한 세상을 향하여
      그래도 멸치는 뼈대 있는 집안이라고
      등뼈 곧추세우며
      누누천년 지켜온 배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