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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머무른곳

세미원 안내

by 바닷가소나무 2010. 7. 29.

> 미리보는 세미원 > 조감도


한강청정기원제단(漢江淸淨祈願祭壇)

이곳은 삼월 삼짓날이 되면 두물머리의 강심수를 길어다 장독대에 올려놓고
국태민안과 가내안녕을 기원하던 양평군 양서면 일대의 민간 풍속을 확대하여
규모가 큰 장독대를 만들어 한강이 맑고 깨끗하게 보존되기를 기원하며
국가의 안녕과 태평을 기원하는 민족의 성스러운 곳으로 조성하였다.
제단의 규모와 형식은 사직단(社稷壇)에 준하였고 조선시대 궁궐을 그린
동궐도(東闕圖)를 참고하여 창덕궁의 장독대를 재현하여 여기에 한강수를
끌어들여 분수대를 만들었다. 이는 한강 물을 민족의 그릇인 살아 숨 쉬는
옹기에 담아 생명이 넘치는 물로 환원 시키겠다는 양평군민의 의지를 상징한
것이다.


관란대(觀瀾臺)

이 장소는 앞에 흐르는 남한강과 멀리 북한강이 합쳐지는 두물머리의
호호양양(浩浩洋洋 큰 강물이 넘칠 듯이 흐르는 모양)한 한강수를 관란하는 곳이다
관란대란 맹자의 진심장구(盡心章句)의 [관수유술(觀水有術)하니 필관기란(必觀基瀾)이니라 물을 보는데도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큰 물결을 보아야 할 것이니라]에 근거를 두어 이름 지었다. 왜 큰 물결을 보아야 할 것인가를 맹자께서는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을 곁들이셨다.
유수지위물야불영(流水之爲物也不盈)이면 불행(不行)이니라 [흐르는 물은 자기가 나아가고자 하는 길에 아무리 크고 작은 웅덩이가 있을지라도 그곳을 다 채우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람이 자기의 나아갈 길에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주변의 사소한 일 위험한 일이 있을지라도 결과를 아름답게 마무리 짓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관란대는 문자 그대로 눈앞에 흐르는 한강의 큰 흐름을 관란하는 곳이다.


모네의 정원

블란서의 세계적인 화가 모네(1840~1926)는 1899년 엡트강의 물을 끌어 올려 연못들을 만들고 연못 가득히 수련을 심어 잔잔한 수면위에 피어 있는 수련들이 발산하는 색깔들과 고요한 물의 어우러진 모습에 우주의 근본적인 신비한 영감을 얻어
그의 노년은 연못과 수련 그림에 전념하게 된다.
모네의 그림 속에 있는 연못과 수련들을 여기 한강의 두물머리 수련단지 안에 펼쳐 놓은 것은 단순한 수련들을 물속에 심어 놓는 것보다 모네처럼 해맑은 내 조국의 하늘과 그 하늘을 담은 연못 사이에 고요히 떠있는 수련들에서 위대한 자연 속에 담겨진 우주의 신비한 영감을 체험하여 그 영감을 도화지에 옮길 수 있는 예술가를 찾기 위해서이다.


유상곡수(流觴曲水)
유상곡수(流觴曲水)란 굽이굽이 물이 흐르는 시설을 만들어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 시(詩)를 읊고 노래를 부르며 풍류를 즐기던 전통 정원시설을 말한다.
경주의 포석정은 통일신라시대에 돌로 정교하게 깎아만든 구조물로 된 물 흐르는 도랑이라면, 고려나 조선시대는 도랑을 파고 물이 흐를 수 있도록 수로를 만들고 주변에 대나무, 소나무, 난초, 석창포 등 선비들이 가까이 하였던 식물들을 식재하였다. 이곳 세미원에서는 고려나 조선의 유상곡수 중 창덕궁의 옥류천과 조선시대 회화속에 나오는 유상곡수를 기본으로하여 복원하였다. 사방에 대나무 울타리(竹垣)을 치고 동쪽엔 국화를, 남쪽엔 목단, 북쪽과 서쪽에 대와 소나무를 식재하였고 서쪽 연못에 연을 식재하여 유상곡수의 품격을 더하였다.


수표(水標)분수
하천이나 호수, 저수지 등의 수위를 재는 측량 기구중 하나로 이 수표는 보물 838호로 지정된 청계천에 수위를 재던 수표를 기본으로 하고 한자(一尺)의 눈금을 원래는 주척(周尺)으로 되어 있으나 30cm를 한자로 하는 현대식 눈금으로 고쳤다.
또한 물 관련 문화재들을 복원하면서 분수의 기능을 더하였다.


풍기대(風旗臺)
우리 조상들이 바람의 방향을 살피던 기후관측기구로 보물 847호로 지정된 창경궁의 풍기대를 기본으로 하였으며 깃발은 동궐도에 그려진 풍기대의 깃발을 참조하였다.


용두당간(龍頭幢竿)분수
당간은 대개 사찰에서 깃발을 다는 깃대의 일종이나 머리 장식에 따라 용머리의
용두당간, 여의주를 모형한 보주당간, 봉황을 머리로 한 봉황당간 등이 있어 지기(地氣)에 따라 그 형태가 달랐다고 한다. 용두당간의 경우에는 화기(火氣)가 넘치는 지형에 수기(水氣)의 상징인 용두당간을 세웠다고 한다. 물 관련 문화재의 복원 차원에서 국보 136호로 지정된 청동용두당간의 형태를 취하였고, 재질에는 하천지역을 감안해 도자기를 사용하였다.


토기탑 등
이국적으로 생겨 중국풍의 탑이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 이 탑등은 서울 강동구 방이동에 위치한 몽촌토성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초기 백제의 귀중한 유물의 하나인 원통 모양의 그릇받침 형태를 기본으로하여 만든 탑등으로 윗부분에 뚜껑을
더하였고 몸체부분에는 뚫어진 구멍들을 좀 더 많이 내어 조명이나 음향기구들이
들어갈 수 있게 하였다.


정병(淨甁)분수
정병이란 불교에서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구(供養具)의 하나로 통일신라시대 이후 많은 유물들이 존재하고 있다.
범어 군디카(Kundika)에서 유래한 말로 물병이란 뜻으로 원래 깨끗한 물을 넣는
병을 일컫는 말로 승려들이 가지고 다니는 필수품인 18물(物)중의 하나였다. 청동이나 도자기로 만들어진 대부분의 유물에서는 대개 버드나무, 갈대, 부들, 물오리, 기러기, 원앙 등 물과 관련 있는 동식물들이 그려져 있다. 또한 탱화 가운데 그려진 정병에는 버드나무가 꽂혀 있어 버드나무가 물을 맑게 하는 기능을 염두에 둔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도 선조들께서는 이미 수생식물들이 물을 정화시키는 큰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한강물을 정결한 물로 만들겠다는 양평군민들의
의지를 정병분수로 표현하였다.


자성문(自省門)
화강암으로 둥글게 조각되어 높이 1.9m 원형으로 만들어진 석문(石門)이다.
둥글게 조각된 것은 자연과 인간이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상징하였고, 머리를 숙이면 문지방에 “우리가 자연에 겸손하면 자연도 우리에게 겸손합니다.”라고 조각되어 있다. 내경의 높이는 1.6m 낮은 크기로 누구든 허리를 굽혀야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과연 나는 아름다운 국토를 위하여 무엇을 하였는가 스스로 반성하는
문이다.


용준(龍?) - 청화백자운용문항아리(靑華白磁 雲龍文壺)
이 기품있고 당당하게 생긴 초대형의 항아리는 몸체의 위아래에 장식된 당초문
예의주문, 연판문 등의 각종 문양을 화려하게 그려넣고, 조선왕조의 자긍심을 나타낸 발톱이 다섯달린용(五爪龍)을 그려놓은 국립박물관 소장의 청화백자 운용문항아리(靑華白磁 雲龍文壺)를 모방하였다. 국가의 연례 행사에는 꽃을 꽂거나 술을 담았고 국가의 길례(吉禮)인 제사때에는 술 또는 맑은물(玄酒)를 담던 항아리이다.


용병(龍甁) - 청화백자운용문병 (靑華白磁 雲龍文甁)
조선자기청화백자 가운데 용그림이 그려진 호암미술관 소장의 보물 786호로 지정된 청화백자운용문병 (靑華白磁 雲龍文甁)을 모형으로 하여 만들었다. 구름속에서 발톱을 세우고 수염을 휘날리며 여의주를 희롱하는 용을 그렸다. 궁중의 연례 행사때 꽃을 꽃거나 술을 담던 병이나 국가의 제례 행사때는 맑은 물을 담아 올리던
제기의 일종이기도 하다.


석창포 재배 수로 및 유상곡수(流觴曲水)
온실안에 크고 작은 수로(水路)를 만들어 석창포를 식재하여, 한겨울철에도 수생식물의 수질정화 능력과 농민들의 소득증대를 실험한다. 아울러 수로들을 이용하여 크고 작은 곡수들을 만들어 시낭송회와 가족문학발표회, 좌담회등을 자연 공간속에서 펼칠 수 있도록 한다. 신라시대부터 내려오던 화랑들이 수류화개(水流花開)
하는 자연공간에서 차를 마시던 우리 전통 다도를 복원하여 자연을 주제로 한 문학, 음악, 명상, 다도 등의 교육장이 되게한다


겸제의 금강산도 복원
아름다운 두물머리의 주변환경과 어울릴수 있도록 한국예술의 백미인 겸제 정선의 금강산 그림을 실제로 축소 복원하여 명산대천을 찾아 심신을 연마하고 자연사랑과 국토사랑의 실천을 다짐하였던 화랑의 자연 교육도량을 참고하여 새로운 형태의 교육장을 만든다.


과학 영농 역사자료실

- 세종시대온실 2002년 남양주에 복원되었던 조선의 1450년경 세종시대 세계최초의 지중가온 및 습도 조절의 과학 영농 온실을 이전 복원하여 조상들의 슬기와
지혜를 학습하게하고 세계시설 원예의 메카로 만든다.
- 정조시대온실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창덕궁에 있던 18세기 궁중
온실을 복원하여 조선건축의 독창적이고 슬기로움을 알리고저 한다.


고려시대 이규보 선생의 사륜정
이 정자는 고려 최대의 시인이요, 선비인 이규보 선생이 직접 설계한 네바퀴가
달린 정자를, 선생이 설계를 해놓고도 이를 실행하여 만들어 사용하지 못하였던
것을 실제로 복원한 것이다. 자연을 몹시도 사랑하여 그 아름다운 자연을 읍송하려고 설계한지 800여년만에 실제로 복원하여 보누 것이다. 당시에 선생이 실제로
정자안에 배치하였던 바둑판, 거문고, 술병, 술잔, 붓, 벼루, 먹, 종이, 책 등
고려시대의 생활집기들도 함께 배치하였다. 오늘날 유행하는 캠핑카의 원조이나 그 품격엔 오늘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자연을 행락(行樂)의 놀이 대상이 아니고
찬송하고 사랑하였던 선인들의 자연관을 되새기고자 사륜정을 복원하였다.


자연사랑 환경 교육 및 체험장
가정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활용하여 지렁이 양가정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활용하여 지렁이 양식하는 방법과 지렁이 분변토를 이용한 채소 및 화초기르기 강좌 및 식물재배, 동물의 올바른 사육법 등 올바른 취미 지도와 환경보전 및 생태에 관한 교육장을 만든다.


육군자원(六君子園)
조상들께서 꽃과 나무를 사랑하면서도 그중에 꽃과 나무의 아름다움만 취하지
않고 꽃과 나무가 가지고 있는 품성을 인격완성의 교육자료로 만들었다. 그중에
대표적인 식물이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사군자(四君子)로 표현하고 여기에
소나무, 연꽃을 성인(聖人)의 반열에 세우고 사랑하였다. 추위를 무릅쓰고 이른봄에 피어나는 개척의 정신의 매화, 부드러우나 강인하고 그 향기가 없는듯하면서
멀리퍼지는 난초, 완성된 선비의 인격과 찬눈서리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국화와
사철변하지 않고 늘푸른 대나무의 절개와 바위나 깊은 산꼭대기 등 삶의 터전이
열악하고 모진 추위나 더위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늘푸른 소나무와 진흙속에 피어나도 더럽지 않고 늘 깨끗하고 맑은 연꽃의 덕성들을 조상들은 군자와 성인에
비교하였다. 이 작은 동산은 조선 초기 선비화가 강희안이 그린 조선초기 사대부가의 정원 그림을 기본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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