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페루’/ 이제니
빨강 초록 보라 분홍 파랑 검정 한 줄 띄우고 다홍 청록 주황 보라. 모두가 양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양은 없을 때만 있다. 양은 어떻게 웁니까. 메에 메에. 울음소리는 언제나 어리둥절하다. 머리를 두 줄로 가지런히 땋을 때마다 고산지대의 좁고 긴 들판이 떠오른다. 고산증. 희박한 공기. 깨어진 거울처럼 빛나는 라마의 두 눈. 나는 가만히 앉아서도 여행을 한다. 내 인식의 페이지는 언제나 나의 경험을 앞지른다. 페루 페루. 라마의 울음소리. 페루라고 입술을 달싹이면 내게 있었을지도 모를 고향이 생각난다. 고향이 생각날 때마다 페루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아침마다 언니는 내 머리를 땋아주었지. 머리카락은 땋아도 땋아도 끝이 없었지. 저주는 반복되는 실패에서 피어난다. 적어도 꽃은 아름답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간신히 생각하고 간신히 말한다. 하지만 나는 영영 스스로 머리를 땋지는 못할 거야. 당신은 페루 사람입니까. 아니오. 당신은 미국 사람입니까. 아니오. 당신은 한국 사람입니까. 아니오. 한국 사람은 아니지만 한국 사람입니다. 이상할 것도 없지만 역시 이상한 말이다. 히잉 히잉. 말이란 원래 그런 거지. 태초 이전부터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무의미하게 엉겨 붙어 버린 거지. 자신의 목을 끌어안고 미쳐버린 채로 죽는 거지. 그렇게 이미 죽은 채로 하염없이 미끄러지는 거지. 단 한번도 제대로 말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안심된다. 우리는 서로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고 사랑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랑한다. 길게 길게 심호흡을 하고 노을이 지면 불을 피우자. 고기를 굽고 죽지 않을 정도로만 술을 마시자. 그렇게 얼마간만 좀 널브러져 있자. 고향에 대해 생각하는 자의 비애는 잠시 접어두자. 페루는 고향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스스로 머리를 땋을 수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양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말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비행기 없이도 갈 수 있다. 누구든 언제든 아무 의미 없이도 갈 수 있다.
심사평:
모두 열두 분의 시가 본심에 올랐다. 그 가운데 김란 씨의 ‘자벌레’ 외 4편과 이제니 씨의 ‘검버섯’ 외 5편이 마지막으로 논의됐다.
김란 씨는 시를 안정감 있게 지을 줄 아는 사람이다. 그의 문체는 단정하고 간결하다. 쓸 데 없는 수사가 없다. 그런데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약하다. 그래서 독자의 머리와 마음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그저 무난히 스쳐간다. “생식기도 성기도 아닌/ 비뇨기만 남았다던”(‘골똘한 화장’에서) 같은 재미있는 표현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활달함이랄지 생기랄지가 모자라 보인다. 관념어의 잦은 사용과 리듬감 없이 늘어진 문장은 생동감의 걸림돌이다.
당선작으로 이제니 씨의 ‘페루’를 뽑는 데 망설임이 없었던 건, 거기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의 재미를 십분 즐기는 듯한 자유로운 형상화 능력도 젊음의 싱싱함과 미래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고향에 대해 생각하는 자의 비애는 잠시 접어두자. 페루는 고향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스스로 머리를 땋을 수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양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말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비행기 없이도 갈 수 있다. 누구든 언제든 아무 의미 없이도 갈 수 있다.”(‘페루’에서)
그의 시들은 대개 행갈이를 하지 않고 문장을 잇대어 쓴 산문시다. 그런데도 그 시들은 리듬감이 뛰어나고, 진술에 역동성이 있다. 생동하는 말맛의 맛깔스러움이 피처럼 출렁거리며 줄글 속을 달린다. 달리는 말의 리드미컬한 속도감이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빈 공간을 메워, 시의 풍경이 활동사진처럼 단절감 없이 펼쳐진다. ‘누구든 언제든 아무 의미 없이도 갈 수 있’는 페루처럼 그 이미지를 논리적으로 따라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 자체의 속도감이 쾌감을 준다. 이 발랄한 시인의 행보가 더욱더 힘차길 기대한다. -황인숙, 최승호-
<동아일보>
추운 바람을 신으로 모신 자들의 經典 / 이은규
어느 날부터 그들은
바람을 신으로 여기게 되었다
바람은 형상을 거부하므로 우상이 아니다
떠도는 피의 이름, 유목
그 이름에는 바람을 찢고 날아야 하는
새의 고단한 깃털 하나가 흩날리고 있을 것 같다
유목민이 되지 못한 그는
작은 침대를 초원으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건기의 초원에 바람만이 자라고 있는 것처럼
그의 생은 건기를 맞아 바람 맞는 일이
혹은 바람을 동경하는 일이, 일이 될 참이었다
피가 흐른다는 것은
불구의 기억들이 몸 안의 길을 따라 떠돈다는 것
이미 유목의 피는 멈출 수 없다는 끝을 가진다
오늘밤도 베개를 베지 않고 잠이 든 그
유목민들은 멀리서의 말발굽 소리를 듣기 위해
잠을 잘 때도 땅에 귀를 댄 채로 잠이 든다지
생각난 듯 바람의 목소리만 길게 울린다지
말발굽 소리는 길 위에 잠시 머무는 집마저
허물고 말겠다는 불편한 소식을 싣고 온다지
그러나 침대위의 영혼에게 종종 닿는 소식이란
불편이 끝내 불구의 기억이 되었다는
몹쓸 예감의 확인일 때가 많았다
밤, 추운 바람을 신으로 모신 자들의 經典은
바람의 낮은 목소리만이 읊을 수 있다
동경하는 것을 닮아갈 때
피는 그 쪽으로 흐르고 그 쪽으로 떠돈다
심사평:
예심을 통과한 15명 투고자들의 작품을 읽고 검토한 결과 두 명의 작품이 최종적으로 남게 되었다.
‘무릎’ 등 5편의 작품을 투고한 조율의 경우 일상적 삶의 구체성에 바탕을 둔 치밀한 관찰과 묘사가 눈길을 끌었다. 그의 시는 감상이나 과장을 멀리한 채 삶의 신산함과 남루함을 적절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그러나 이 투고자의 시적 발상이나 화법은 새롭다기보다는 기존의 유형화된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또 시를 떠받치는 인식이 아무래도 소품 지향적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반면 ‘추운 바람을 신으로 모신 자들의 經典(경전)’ 등 5편을 투고한 이은규의 경우 일상에서 시를 출발시키기보다는 관념에서 시를 끌어오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추상적 경향을 띠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시는 작품을 관류하는 활달한 상상력 덕분에 요즘 시에서 보기 힘든 탁 트인 느낌과 더불어 세련된 이미지와 진술의 어울림이 주는 감흥을 맛볼 수 있었다. 잠언풍의 시는 자칫하면 시적 긴장을 이완시킬 수 있는데 그는 이런 함정을 잘 피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두 선자는 이번 심사에서 일상의 세목에 대한 충실보다는 ‘바람을 동경하는’ ‘유목의 피’에 잠재된 가능성을 믿어보기로 했다. 당선자의 시가 한국시의 비좁은 영토를 열어젖히고 나아가는 언어의 모험으로 연결되기를 희망한다.
-이시영, 남진우-
<문화일보>
하모니카 부는 오빠 / 문정
오빠의 자취방 앞에는 내 앞가슴처럼
부풀어 오른 사철나무가 한그루 있고
그 아래에는 평상이 있고 평상 위에서는 오빠가
가끔 혼자 하모니카를 불죠
나는 비행기의 창문들을 생각하죠, 하모니카의 구멍들마다에는
설레는 숨결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죠
이륙하듯 검붉은 입술로 오빠가 하모니카를 불면
내 심장은 빠개질 듯 붉어지죠
그때마다 나는 캄보디아를 생각하죠
양은 밥그릇처럼 쪼그라들었다 죽 펴지는 듯한
캄보디아 지도를 생각하죠, 멀어서 작고
붉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 오빠는 하모니카를 불다가
난기류에 발목 잡힌 비행기처럼 덜컹거리는 발음으로
말해주었지요, 태어난 고향에 대해,
그곳 야자수 잎사귀에 쌓이는 기다란 달빛에 대해,
스퉁트랭, 캄퐁참, 콩퐁솜 등 울퉁불퉁 돋아나는 지명에 대해,
오빠의 등에 삐뚤빼뚤 눈초리와 입술들을
붙여놓은 담장 안쪽 사람들은 모르죠
오빠의 하모니카 소리가 바람처럼
나를 훅 뚫고 지나간다는 것도 모르죠
검은 줄무늬 교복치마가 펄렁, 하고 젖혀지는 것도
영원히 나 혼자만 알죠
하모니카 소리가 새어나오는
그 구멍들 속으로 시집가고 싶은 별들이
밤이면 우리 집 평상 위에 뜨죠
오빠가 공장에서 철야작업 하는 동안
별들도 나처럼 자지 않고 그냥 철야를 하죠
심사평:
최종심까지 논의된 작품은 김강산의 ‘천렵’, 김연아의 ‘밤의 지평선 아래’, 김중곤의 ‘불알을 끼우며’, 문정의 ‘하모니카 부는 오빠’ 등 4편이었다.
이 중 ‘천렵’은 천렵의 의미가 은유화되지 못하고 지극히 식상하다는 점에서, ‘밤의 지평선 아래’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힘이 약하다는 점에서, ‘불알을 갈아 끼우며’는 해학적이라는 장점은 있으나 산문성이 강하다는 점에서 각각 제외되어 자연히 ‘하모니카 부는 오빠’가 당선작으로 결정되었다.
당선작 ‘하모니카 부는 오빠’는 현실적 고통을 고통스럽다고 말하지 않고도 고통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데에 큰 장점이 있는 시다. 그리고 그 고통을 아픔으로 느끼게 해주는 게 아니라 극복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나 힘 같은 것으로 느끼게 해주는 미덕이 있는 시다.
그래서 이 시는 전반적으로 화사하다. 그렇지만 그 화사함이 추하거나 가볍지 않고 따뜻하고 정답다. 진솔하고 꾸밈 또한 없다.
마치 한 소녀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꿈과 희망의 속삭임을 듣는 것 같다. 현실 인식의 시들이 대체로 부정적이고 어두운 데 반해 이 시는 긍정적이고 밝다.
캄보디아에서 온 한 노동자의 삶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삶 속에 있는 ‘킬링필드’의 고통조차도 모성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아름다운 부분이 있다. 앞으로 큰 시인으로 성장해나가길 기대해본다.
-오세영, 정호승-
<서울신문>
가벼운 산 / 이선애
태풍 나리가 지나간 뒤, 아름드리 굴참나무
등산로를 막고 누워 있다.
오만상 찌푸리며 어두운 땅속을 누비던 뿌리
그만 하늘 향해 들려져 있다.
이젠 좀 웃어 보라며
햇살이 셔터를 누른다.
어정쩡한 포즈로 쓰러져 있는 나무는 바쁘다.
지하 단칸방 개미며 굼벵이
어린 식구들 불러 모아
한 됫박씩 햇살 들려 이주를 시킨다.
서어나무, 당단풍나무, 노각나무 사이로 기울어진 채
한 잎 두 잎 진창으로
꿈을 박고 있는 굴참나무
제 뼈를 깎고 피를 말려 숲을 짓기 시작한다.
생살이 찢겨 있는 굴참나무,
그에게서는 고통의 향기가 난다.
살가죽의 요철이
전 재산을 장학금으로 기탁한
밥장수 할머니의 손등만 같다.
끝내 허리를 펴지 못하는
굴참나무가 세로로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은 편견이다.
굴참나무가 쓰러진 것은 태풍 나리 때문이 아니다.
나무는 지금 저 스스로
살신성인하는 중이다, 하늘 가까이 뿌리를 심기 위해.
심사평:
예선을 거쳐 본선에 올라 온 시편들을 정밀하게 읽고 이에 대해 논의한 다음 다시 최종심의 대상을 다섯 편으로 압축하였다.‘낡은 피아노에는 빗소리가 난다´(송인덕)는 자연스러운 시상의 전개가,‘난초와 칼´(이연후)은 이미지의 선명성이,‘양치하는 노파´(한세정)는 시적 함축성이,‘바닷가 떡집´(김영진)은 진득한 삶의 감각이,‘가벼운 산´(이선애)은 시적 발상 전환이 돋보였으나 각각 그 나름의 약점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시편을 놓고 좀 더 범위를 좁힌 결과 세 편의 시가 남게 되었다.‘난초와 칼´은 이미지의 선명성은 두드러지지만 대립구도가 너무 단순하고,‘가벼운 산´은 시적 발상 전환이 참신했으나 설명적인 부분이 시적 밀도를 약화시켰으며,‘낡은 피아노에는 빗소리가 난다´는 자연스러운 시적 전개가 강점이지만 상식의 틀을 크게 넘어서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웠다.
엇비슷한 수준의 작품을 놓고 논의를 거듭한 끝에 심사위원들은 ‘가벼운 산´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는데 이는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의 참신성과 더불어 그 속에 담긴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특히 전 재산을 장학금으로 기탁한 밥장수 노파의 손등에서 고통의 향기를 관찰한 시인의 시선은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솜씨와 더불어 눈여겨볼 만한 점이라고 하겠다. 삶을 바라보는 독자적인 시선이 시적 구도 속에서 빛날 때 남다른 작품이 탄생한다는 사실을 신춘문예 응모자들은 다시금 되새겨 주기 바란다.
-오세영, 최동호-
<세계일보>
너와집 / 박미선
갈비뼈가 하나씩 부서져 내리네요
아침마다 바삭해진 창틀을 만져보아요
지난 계절보다 쇄골 뼈가 툭 불거졌네요
어느새 처마 끝에 빈틈이 생기기 시작했나 봐요
칠만 삼천 일을 기다리고 나서야
내 몸속에 살갑게 뿌리 내렸지요, 당신은
문풍지 사이로 흘러나오던
따뜻한 온기가 사라지고
푸른 송진 냄새
가시기 전에 떠났어요, 당신은
눅눅한 시간이 마루에 쌓여있어요
웃자란 바람이, 안개가, 구름이
허물어진 담장과 내 몸을 골라 밟네요
하얀 달이 자라는 언덕에서
무작정 기다리지는 않을 거예요, 나는
화티에 불씨를 다시 묻어놓고
단단하게 잠근 쇠빗장부터 열겁니다
나와 누워 자던 솔향기 가득한
한 시절, 당신
그립지 않은가요?
심사평: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이 수준이나 내용이 비슷비슷했다.
특별히 개성 있는 시가 별로 눈에 띄지 않았고, 재미있게 읽히는 시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실직’(이재근), ‘나비의 꿈’(문계현), ‘너와집’(박미산) 같은 작품들은 신춘문예라는 관문을 통과할 수준은 넉넉히 되었다.
먼저 ‘실직’은 삶에 뿌리박은 정서의 시로서 호소력을 갖는다. 한데 무언가 신선한 맛이 덜하고, 죽음의 이미지가 시를 무겁게 만든다. 게다가 너무 건조하다.
같은 작자의 ‘얼굴’은 읽는 재미는 ‘실직’보다 낫겠는데, 산만하고 장황한 것이 흠이다.
‘나비의 꿈’은 장애인 부부의 외식 나들이가 소재가 된 시로서, 그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비유가 좀 억지스럽고 관념적이다. 외국인 근로자가 화자가 되고 있는 ‘붉고 둥그스름한 다라이’는 정리가 더 돼야 할 소재 같다.
하지만 남과 같지 않은 상상력은 그의 앞날에 기대를 가지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너와집’은 아주 따듯한 시여서 일단 호감이 간다.
물론 ‘너와집’은 실제의 너와집이기보다 ‘당신’과 ‘내’가 만든 사랑의 집일 터, 그 비유가 호소력이 있어 아름답기까지 하다.
말이나 감각도 신선하고 맛깔스럽다. ‘문둥이가 사는 마을, 이랑진 무덤들 사이에도’는 열두 살 여름의 추억을 소재로 하고 있는 시로서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재미있게 읽힌다.
이렇게 해서 우리 두 심사위원은 최종적으로 박미산의 ‘너와집’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신경림, 유종호-
<조선일보>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 유희경
1.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이 안은 비좁고 나는 당신을 모른다
식탁 위에 고지서가 몇 장 놓여 있다
어머니는 자신의 뒷모습을 설거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 쪽 부엌 벽에는 내가 장식되어 있다
플라타너스 잎맥이 쪼그라드는 아침
나는 나로부터 날카롭다 서너 토막이 난다
이런 것을 너덜거린다고 말할 수 있을까
2.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면도를 하다가 그저께 벤 자리를 또 베였고
아무리 닦아도 몸에선 털이 자란다
타일은 오래되면 사람의 색을 닮는 구나
베란다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삼촌은
두꺼운 국어사전을 닮았다
얇은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간다
뒷문이 지워졌다 당신이 찾아올 곳이 없어졌다
3.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간 밤 당신 꿈을 꾼 덕분에
가슴 바깥으로 비죽하게 간판이 하나 걸려진다
때 절은 마룻바닥에선 못이 녹슨 머리를 박는 소리
아버지를 한 벌의 수저와 묻었다
내가 토닥토닥 두들기는 춥지 않은 당신의 무덤
먼지들의 하얀 뒤꿈치가 사각거린다
심사평:
예심을 거친 20명의 응모작들 가운데 이연후씨의 ‘우니코르’, 이서씨의 ‘고래자리’, 최수연씨의 ‘누에의 잠’, 유희경씨의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정도가 최종심 대상작으로 언급할 만하다고 여겨진 작품들이다.
신춘문예 응모작들을 보면 한 시대의 사회적 징후가 집약된 듯한 목록들을 읽을 수가 있다. 그 목록들이란, 최근 수년 동안 뭉쳐져 있는 경향이어서 어지간해서 피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이번에도 역시 현저히 즉물적이다는 것, 다분히 자폐적이다는 것, 몰개성적이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특징들이 나쁘다, 좋다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요는 이런 특징들을 가지되 응모작들이 스스로를 한편의 시로 ‘성립’시키고 있는가를 가려내는 것이 우리 심사자들이 할 일이었다.
최소한 어떤 것이 시이기 위해서 갖는 조건, 즉 ‘시의 기본’을 모른 채 시 비슷하게 써서 시라고 우기는 것 같은 수많은 위조품들을 읽어야 하는 심사자의 고역은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즉물적이다는 것은 사물을 주절이 주절이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언어를 헤프게 낭비하는 것, 동어반복하는 것은 시에서는 범죄일 수 있다. 또 쓴 사람도 읽는 사람도 뭐가 뭔지 도통 알 수 없는 넌센스의 나열이나 실패한 은유들을 가지고 시의 특권이라고 오해하게 해서도 안 될 일이다. 무엇보다도 이 많은 투고작들이 어쩜 한 사람이 쓴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주었는데 이 개성의 표준화에 대해 뭐라 말해야 할까?
위의 네편 최종심 대상작들도 이런 지적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지점에서 스스로를 시로 성립시키는 힘이 있다고 여겨졌다. 최수연씨, 유희경씨의 두 작품을 놓고 고민하다가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를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 우리는 동의했다. 최수연씨가 시를 다루는 데 더 유연해 보이는 점이 있지만 유희경씨가 상대적으로 더 참신해 보인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선자는 앞으로 한 권의 시집으로 자신의 시인됨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황지우. 문정희-
<한국일보>
차창밖, 풍경 빈곳 / 정은기
철길은 열려진 지퍼처럼 놓여있다, 양 옆으로
새벽마다 물안개를 뱉어내는 호수와
<시골밥상>이니 <대청마루>니 하는 간판의 가든촌이
연대가 다른 지층처럼 어긋나 있다
등 뒤로 떨어지는 태양이 그림자로 가리키는 북동의 방향으로
질주하는 춘천행 무궁화호 열차
지퍼를 채우듯 튿어진 자리를 꿰매며 달려가는 것은 열차의 속도였다
기차의 머리가 향하는 방향을 보여주는 것은
긴장을 잃고 곡선으로 휘어지는 구간에서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곳에 자리를 튼 마을이 호수에 기대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가정식 백반>의 가정을 찾아 속도에 몸을 싣고 거꾸로 달린다
이곳에서는 두고 온 먼 곳의 시간을 추억하는 일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관람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박물관을 찾는 일만큼이나 자본주의적이다
직선의 끝에는 목적지가 있어
마을은 머지않아 먼지의 전시관이 될 것이다
곁길로 샐 수 없는 것이 슬프다는 것을 호수는 알고 있을까
튿어진 굴곡을 따라 살을 드러낸 풍경의 허리를 휘감고
돌아가는 기차, 가끔씩 창밖으로
활처럼 휘어지는 기차의 곡선을 본다면
퇴락을 거듭하는 호숫가 옆, 한 마을이 생각날 것이다
심사평:
시는 말 걸기다. 시적 대상에게 말 걸기. 하지만 여기에서 그친다면 아직 시가 아니다. 시적 대상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결국 독자에게 말을 건다는 것이다. 시는 대화다. 그러니 시적 대상과의 대화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독자와의 대화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수많은 응모작 가운데 한 작품, 즉 새로운 시인을 가려내는 과정은 곧 개성적인 대화 능력을 선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심사위원들이 최종적으로 여섯 편의 응모작을 논의 대상으로 삼았다. 홍종화의 <투명한 돌밭>, 신희진의 <온난화>, 임재정의 <나를 겨누다>, 임경섭의 <자동판매 김대리>, 박은지의 <뿔의 냄새>, 정은기의 <차창 밖, 풍경의 빈 곳>. 이 가운데 먼저 네 편을 제외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투명한 돌밭>은 비유와 묘사가 탁월했지만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했고, <온난화>는 구성과 전개가 자연스러웠으나 결말이 어색했다. <나를 겨누다>는 단단한 기본기가 눈길을 끌었지만 애인과의 이별과 사과를 깎는 행위가 작위적으로 보였다. <자동판매 김대리> 역시 시적 주체의 행위가 개연성을 갖지 못했다.
남은 두 작품은 박은지의 <뿔의 냄새>와 정은기의 <차창 밖, 풍경의 빈 곳>.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박은지의 작품이 성숙했지만, 표현의 차원에서는 정은기의 작품이 뛰어났다. 결말 처리는 박은지가 우수했고, 도입부는 정은기가 참신했다. 두 응모작은 상호 보완 관계에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고심 끝에 정은기의 언어적 감수성에 점수를 주기로 했다. 시적 대상에게 말을 거는 방식의 새로움이 독자와의 신선한 대화로 이어진 것이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는 동시에 최종심에 오른 다섯 분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부디 출발 시점에 연연해하지 말고, 길게 보시기 바란다. 10년, 20년 뒤 누가 더 좋은 시를 쓸 것인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정호승, 이숭원, 이문재-
<부산일보>
예의 / 조연미
손바닥으로 찬찬히 방을 쓸어본다
어머니가 자식의 찬 바닥을 염려하듯
옆집 여자가 울던 새벽
고르지 못한
그녀의 마음자리에
귀 대고 바닥에 눕는다
누군가는 화장실 물을 내리고
누군가는 목이 마른지 방문을 연다
무심무심 조용하지만
숨길 수 없는 것들을
예의처럼 모르는 척 하는 일상
아니다, 아니다 그러나
아니더라도 어쩔 수 없다
몸의 뜨거움으로
어느 귀퉁이의 빙하가 녹는지
창 너머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또 잊혀지는 것들이 생기는 것이다
뻔하고 흔한
세상의 신파들 사이를 질주하며
이번에는 흥청망청 살고 싶어요 소리치며
눈은 내리고
가지런히 슬픔을 조율하며 우는
벽 너머의 당신
찬 바닥에 기대어
누군가의 슬픔 하나로
데워지는 맨몸을 가만 안아본다
심사평:
뽑는이들의 손에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김중곤의 '소금밭의 기억', 조연미의 '예의' 두 편이다. '소금밭의 기억'은 녹록지 않은 시력으로 다져진 단단한 틀거지를 지녔다. 바닷물이 소금으로 변화해 가는 과정이라는 다소 낯익은 글감에 대한 흔치 않은 상상적 투사가 돋보인다. 그러나 작품 세부까지 충분한 제어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열아홉 줄에 걸친 한 편 시 속에서 '하얀'이라는 수식어를 다섯 번이나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무엇인가를 응모자는 곰곰 헤아려 보아야 할 일이다.
조연미의 '예의'는 '소금밭의 기억'에 견주어 단연 신선하다. 함께 보내온 작품들이 지닌 역량도 만만찮다. 사소한 일상을 결코 범상하지 않게 다듬어 내는 솜씨가 고르다. '예의'는 나와 타자의 만남이라는 주제를 따뜻하면서도 곡진하게 끌어 안은 작품이다. '창'과 '벽'으로 표현되고 있는 경계를 축으로 그 너머 세계와 합일을 꿈꾸는 상상적 줄거리는 가벼운 반어적 기슭까지 닿아 있다. 아직도 시가 우리 둘레에서 위안의 장소가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본보기가 됨직한 작품이다. 게다가 '몸의 뜨거움으로/어느 귀퉁이의 빙하가 녹는지/창 너머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와 같은 빛나는 깨달음까지 얻고 있음에랴. 뽑는이들은 상투형을 벗어난 '예의'의 신선한 가능성에 훨씬 높은 점수를 주어 당선작으로 민다. 모름지기 오래 기억될 시인으로 거듭나기 바란다.
뽑는 이들의 눈을 한참 머물게 했던 작품을 보내준 세 사람, 예컨대 '아버지의 침대'의 박금숙, '벽'의 박해술, 그리고 '102번을 타고'의 조해점과 같은 이에게도 격려를 보낸다. 머지않아 제 목소리를 내는 신인으로 즐겁게 만날 수 있으리라
-황동규, 박태일, 최영철-
<국제신문>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 / 이언지
가을, 입질이 시작되었다
만물이 보내는 연서가 속속 배달 중이다
온몸이 간지럽다
배롱나무 붉은 글씨는 화사체라고 하자
작살나무가 왜 작살났는지
내야수는 내야에만 있어야 하는지
계집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작살나게 이쁜 열매가 미끼였다고
의혹은 무조건 부인하고 보는 거야
경자년이 정해년에게 속삭인다
낮은 음들이 질러대는 괴성에 밥숟갈을 놓친 귀들
은해사 자두가 맛있었다고 추억하는
입술을 덮친다
누가 빠앙 클랙슨을 누른다
-당신의 유방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테이프을 갈아끼우는 사이
농염의 판타지가 물컹 섞인다
비탈 진 무대에서 마지막 스텝을 밟는다
끼어들고 싶다 소리와 소리 사이
스텝과 스텝 사이, 소문과 소문 사이
납작하게 드러눕고 싶다
내 것도 아니고 네 것도 아닌
죽은 나에게 말 걸고 싶다
거시기, 잠깐 뜸들이고 싶다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
노랑 소인이 찍힌 연서는
하룻밤만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
사라져 도착할 것이다
소멸을 윙크하는 가을 프로젝트
데카당스도 이쯤이면 클래식이다
*마농꽃:달래의 제주 방언, 샤프란
심사평:
시의 수준은 상당히 평준화 되어가고 있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만큼 패기만만하면서도 신인으로서의 놀라운 역량을 엿보게 하는 발군의 작품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런 중에도 김진의 '달, 멈추다', 김미혜의 '몽유', 김정의 '숨 쉬는 고서점', 이언지의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 등은 최종 논의 대상 작품으로서 시를 읽는 즐거움을 맛보게 했다.
'달, 멈추다'는 설화적 이미지를 현재화하는 발상 자체는 살만 했지만, 그 현재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이미지화가 선명하게 부각되지 못한 한계가 보였다. 시는 세계에 대한 시인의 새로운 해석이란 점을 새삼 환기시켜 주었다.
'몽유'는 예민한 감각을 통한 이미지화나 새벽의 분위기를 형상화하는 시선은 좋으나, 시어 선택에서 아직은 개성적인 자기 언어를 창출하는 힘이 모자랐다.
시인은 일상어를 자기 언어로 새롭게 전환시켜가는 힘을 스스로 내장하고 있어야 한다.
'숨 쉬는 고서점'은 활달한 시적 상상력의 전개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그 상상력을 밑받침해줄 수 있는 이미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한계가 지적되었다.
이에 비해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는 우선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언어유희에 가까울 정도로 능수능란함을 보여주고 있다.
또 인간의 내밀한 욕망을 드러낼 듯하면서 감추며, 감출 듯하면서 드러내는 암시적이며 은유적인 시적 전개와 거침없이 펼쳐가는 상상력의 힘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이와 함께 다른 작품들이 보여주는 시적 수준도 앞으로의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역량을 보여주었기에 심사위원 전원은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정진을 빈다.
-문정희, 남송우, 정일근-
<대구매일신문>
파문 / 이장근
결혼을 코앞에 두고
여자는 한강에 투신했다
이유를 묻지 않았다, 물은
여자를 결과로만 받아들였다
파문을 일으키며 열리고 닫히는 문
물은 떨어진 곳에 과녁을 만든다
어디에 떨어져도 적중이고 무엇이 떨어져도 적중이다
투신한 죽음도 다시 떠오른 삶도
물은 과녁을 만들어 적중을 알렸다
적중을 알리며 너는 왔다
온몸에 파문처럼 돋던 소름
빗나간 너의 말도 떨어지는 족족 적중했다
사랑처럼 민감한 것이 또 있으랴
이유 없이 떠나도 결과는 적중이었다
이유 없이 너는 가고
나는 안개 같은 거짓말로 너를
미워했다, 그리워했다, 지웠다, 썼다
사랑처럼 가벼운 것이 또 있으랴
구름이 되어 제멋대로 문장을 만들다
지치면 낱글자가 되어 떨어졌다
지금도 비가 온다 몸에 소름이 돋는다
네가 오고 있는 것이다
이 밤 이 세상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랑이 투신할 것인가, 투신하는 족족
파문을 일으키며 적중할 것인가
심사평:
예심을 거쳐 올라온 서른 분의 작품을 다시 검토해 본 결과 남은 작품은 ‘황소’(서은교), ‘아가리 마을’(이규), ‘가야동 계곡’(김순자), ‘아스팔트 칸트’(기우연), ‘입이 없는 비평’(최문희), ‘나무별똥’(문성록), ‘불안의 거처’(김지고), ‘일획’(정수원), ‘마네킹’(박정수), ‘소금밭의 기억’(김중곤), ‘바늘’(김명희), ‘파문’(이장근), ‘토마토’(하숙욱), ‘등피를 닦으며’(박선영) 등이었다.
매번 느끼는 일이지만 신춘문예의 특성상 새로운 것에 천착한 나머지 일부러 문장을 비틀고 기발한 착상에 몰두해 난삽한 기교의 과잉에 의한 억지가 많았다.
비튼 문장이나 발상이 독특한 감각으로 살아나 신선한 감동을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새로운 감수성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표현하기까지의 데생의 기초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냥 시단의 한 흐름을 따르고 있는 난해한 아류의 것들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런 점에서 새로움도 있고 표현의 신선함을 주는 작품으로 ‘일획’ ‘마네팅’ ‘소금밭의 기억’ ‘바늘’ ‘파문’ ‘등피를 닦으며’ 등을 들 수 있었다. 작품 하나 하나 놓고 볼 때 모두 독특한 포즈을 지니고 있어 오래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투고한 작품이 모두 고르다는 점에서 이장근의 ‘파문’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파문’은 자칫 통속적으로 떨어질 평이한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독특한 시적 비전에 의해 삶의 진지성과 감동을 주는 데 효과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이 시인이 지닌 삶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앞으로 더 깊은 비전에 천착해 좋은 작품을 생산하길 바란다.
-권기호, 정호승-
<영남일보>
나무는 나뭇잎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 조혜정
처음 찍은 발자국이 길이 되는 때
말의 반죽은 말랑말랑 할 것이다
나무는 나뭇잎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쏙독새는 온몸으로 쏙독새일 것이다
아랫도리를 겨우 가린 여자와 남자가 신석기의 한 화덕에 처음 올려놓았던 말. 발가벗은 말. 얼굴을 가린 말. 빵처럼 향기롭게 부풀어 오른 말. 넘치고 끓어오르는 말. 버캐 앉는 말. 빗살무늬 허공에 암각된 말.
처음 만난 노을을 허리띠처럼 차고 만 년 전 바람이 만 년 전 숲에서 불어온다 뒤돌아보는 여자의 열린 치맛단 아래 한번도 씻지 않은 말의 비린내 훅 끼쳐온다 여자가 후후 부풀린 불씨가 쏙독새 울음소리에 옮겨 붙는다 화덕 앞에 쪼그린 아이들 뜨겁게 반죽한새소리를 공깃돌처럼 굴리며 논다 진흙 같은 노을 속에 층층 켜켜 찍히는 손가락 자국들,
귀먹은 아이는 자꾸 흩어지는 소리를 뭉치고 굴린다
깊고 먼 어둠을 길어 올려 둥글게 반죽한다
천 개의 나뭇잎들이 천 개의 귀를 붙잡고
흔드는 소리, 목구멍 속에서 쏙독새 울음소리가
허공을 물고 터져나온다
바람이 석류나무 아래서 거친 숨결을 고르자
처음부터 거기 살고 있는, 아직도 증발하지 않은
침묵의 긁힌 알몸이 보인다
나무는 나뭇잎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쏙독새는 온몸으로 쏙독새인
그 길이 보인다
심사평:
예심을 거쳐 넘어온 작품들의 수준은 비슷비슷했다. 거듭 읽어도 두드러진 작품이 보이지 않아 두 심사위원은 당선작을 결정하지 못한 채 숙고를 거듭했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메타세콰이어' '유클리드 연대기' '구름 위의 문장들' '두부의 힘' '주왕산' '천 개의 붉은 방' '나무는 나뭇잎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등이었다.
이 작품들은 나름대로의 장점을 지니고 있었으나 그것으로 한 시인의 개성화에 이르기에는 부족한, 군데군데의 흠을 지니고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들의 장점을 발견하는데 주력하며 후속 작품들까지 정독했다.
'메타세콰이어'는 발상이 신선하고 마지막 연이 진한 여운을 던진다는 미덕이 있으나 전체의 시가 지니는 언어들의 긴장감이 떨어지며 후속 작품들의 수준이 이 시를 받쳐주지 못한다는 결함이 지적되었다. '유클리드 연대기'는 일종, 이야기 시의 재미를 느끼게 한다. 최근에 유행하는 시의 흐름을 띠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 시는 편안하게 읽히기는 하나 언어의 긴장미가 떨어진다는 결함이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시 안에 탈자(脫字)가 있음도 주의를 요한다. '구름 위의 문장들'은 '붉은 호수'와 함께 최근 유행하는 시들을 많이 읽었거나 그런 습작의 훈련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가 일상성에서 일탈한 신선한 감수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이 결함으로 지적되었다. '주왕산'은 섬세한 감각의 미덕을 보이고 있다. 흔하지 않은 새 이름, 꽃 이름들이 불러일으키는 시적 아름다움도 돋보인다. 그러나 이런 류의 시가 갖는 공통적인 흠인 전달력과 무게의 약화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두부의 힘'은 부드럽고 유려한 언어의 감각을 지니고 있어 음미할수록 시의 맛이 우러나는 작품이고 부분 부분 좋은 구절들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전반부가 서술적이고 긴장미가 떨어져 독자를 견인할 힘이 약하다.
마지막으로 남은 작품은 '천개의 붉은 방'과 '나무는 나뭇잎 속으로…'였다. '천 개의 붉은 방'은 강렬한 이미지와 생동하는 어휘들을 동원하고 있음이 장점이다. 형태상으로도 완성도가 높아 오랫동안 심사위원들을 숙고케 한 작품이다. 하지만 허두 부분의 신선함에 비해 중간 부분이 흐려져 있다. 거기 비해 '나무는 나뭇잎 속으로…'는 허두부터 언어의 세련미가 돋보이고 참신한 상상력의 자장을 띠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한 정련의 과정을 말한 시인데 읽을수록 새로운 맛이 솟아난다. 그러나 후반부가 흐리고 기성 시인의 냄새를 풍기며 행을 좀더 압축할 필요가 있다. 심사위원은 이상의 작품들이 갖는 결함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운 작품으로 보이는 '나무는 나뭇잎 속으로…'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응모자 여러분의 문운을 빈다.
-이기철, 최동호-
<대전일보>
책장애벌레 / 이종섶
낡은 책장은 망치로 부수는 것보다
드라이버를 사용하는 것이 더 간단하다
나무의 이음새마다 박혀있는 나사못
숨쉬기 위해 열어놓은 십자정수리를 비틀면
내장까지 한꺼번에 또르르 딸려 올라오고
허물처럼 남아있는 벌레의 집에
어두운 그림자가 밀려들었다
안간힘을 다해 붙어있는 것들을
대여섯 마리씩 잡을 때마다
하나 둘 떨어져나가는 책장의 근육들
바닥에 납작 주저앉을 무렵엔
한 줌 넘게 모인 애벌레가 제법 묵직했다
가지와 가지 사이를 물고
깊은 잠을 자야했던 동면기가 끝나면
훨훨 나비가 되어 숲속으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책장이 늙어버린 탓에
애벌레만 집을 잃고 말았다
꼼지락거리는 것들 땅바닥에 던져버리려다
회오리돌기가 마디마디 살아있어
공구함에 보관해둔다
상처도 없고 눈물도 없으니 언젠가는
다시 나무속에 들어가 살게 될지도 모른다
밤만 되면 꾸물꾸물 기어 다니는 소리
나무의 빈 젖을 물고 싶어 오물거리는 소리
고아원의 밤이 깊어간다
심사평:
결심에 오른 작품들의 수준은 작년보다 높았다. 언어를 다루는 능력이나 깊이 있는 주제를 다루려고 노력한 점 등에서 대부분의 작품이 일정 수준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신춘문예 투고작들이 종종 그렇듯이 요설로 인해 불필요하게 글이 길어진 작품이 많다는 점, 그리고 개성적인 작품이 드물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 중에서 다섯 사람의 작품이 거론되었다. ‘흑백필름’은 착상의 신선함에서, ‘털과 향로’는 섬세한 언어구사에서, ‘졸참나무 숲’은 주제를 추구하는 힘에서 좋은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약간씩의 결점도 가지고 있어 당선작으로 밀기에는 미진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집’과 ‘책장애벌레’를 놓고 꽤 오랜 시간 숙의하였다. 나름대로의 장점을 갖추고 있어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웠던 때문이다.
‘그녀의 집’의 지은이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다양한 시어를 자유롭게 엮어가는 솜씨가 돋보인다. 특히 이 작품은 장애를 가진 몸으로 아이를 길러내는 여인을 토마토 나무와 연결하여 건강성을 추구한 짜임새 있는 전개가 좋았다.
‘책장애벌레’는 독특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낡은 책장을 부수는 과정을 담은 이 시는, 해체된 책장 자체보다 책장을 지탱하였던 나사들에 주목하였다. 나무를 물려 책장을 구성했다가 할 일을 잃은 나사들에게 연민과 애정을 표현한 이 시는, 이 시대에 자기 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상실감을 우회적으로 전달한다.
숙고 끝에 심사위원들은 시적 표현의 세련미보다는 개성 쪽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책장애벌레’는 생생하고 힘이 있어 감동을 창출하는 데 좀 더 강했다. ‘그녀의 집’도 당선작이 될 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좌절하지 말고 좋은 시를 쓰기를 기대한다.
-김명인, 양애경-
<광주일보>
구두 수선공 / 최일걸
그는 구두 밑창에 겹겹이 달라붙은 길들을
더듬는다 뒤엉킨 길들을 풀어놓으려는
그의 손마디가 저릿하다
시한폭탄을 해체할 때처럼 진땀나는 순간,
자칫 잘못 건드리면 길들이 한꺼번에 들고 일어서거나
뜀박질이 그의 심장을 짓밟고 지나갈 것이다
자꾸 엇박자를 놓는 길과 걸음이 구두를 망가뜨린다
구두란 길과 걸음의 교차점,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는 걸음과 길에서
절충점을 모색하기 전에 그는 먼저 숨을 고른다
쉼 없이 구두 뒷굽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길,
막바지로 구두를 몰아세우는 걸음걸음,
그를 여기까지 내몬 것은 길도 걸음도 아니었다
구둣방 선반 위에서
번득이며 광휘를 뿜어내는 구두가
시치미를 떼고 돌아앉는다
그는 어긋난 길들을 구두에서 삭제하고는
도톰한 밑창으로 새로운 길을 포장한 다음
못을 박아 단단히 고정한다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세상에서
굽의 높이를 조정하는 일 또한 만만치 않다
못이 박힌 손으로 나달나달 떨어진 날들을 깁는
그는 차츰 지워지고 실밥이 그를 대신하여
툭툭 삐져나온다
보행을 손보는 일은 손님의 몫이지만
그는 시선을 곧게 펴서 손님의 종종걸음을 떠받친다
그의 뼈마디가 시큰거리다가 어긋난다
심사평:
올해는 응모작이 줄어서인지 본심에 올라온 16명의 작품을 읽으며 전반적으로 수준이 다소 떨어진다는 인상이 들었다.
그 중에서 정영희, 김효준, 최일걸 등의 작품이 가장 마지막까지 남았다.
정영희의 시는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세련되고 날렵한 반면, 의미구조가 취약하거나 모호한 게 흠이었다.
구체적 언어와 추상적 언어를 교직하는 것이 일종의 낯설게하기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지만, 정영희의 시에서는 그 연결이 순탄치 않거나 진술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게 느껴진다.
‘패닉의 바다’, ‘소나무역’처럼 유니크하고 일정한 스케일을 지닌 시를 결국 내려놓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시적인 새로움이란 표현의 참신함뿐 아니라 읽으면 읽을수록 확장되는 의미의 깊이에서 온다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그에 비해 김효준의 시는 다소 거칠지만 시상을 밀고 나가는 힘을 지니고 있다.
‘박쥐의 서곡’, ‘구름공장’, ‘닭’ 등 가족의 고단한 삶을 동화적 비유나 우화적 상상력으로 그려내고 있는 김효준의 시들은 간명하고 발랄한 대신 시적인 복합성이나 여백을 잃어버리기가 쉽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소재의 폭을 넓히고 상상력을 좀더 다채롭게 변주할 수 있다면 좋은 시인으로서의 자질은 충분히 있다고 여겨진다.
당선작으로 뽑은 최일걸의 시들은 강렬하지는 않아도 꼼꼼한 관찰과 묘사를 통해 대상을 인상적으로 각인해낸다.
묘사 중심의 시들이 지닌 답답함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답답함을 극대화하는 것도 하나의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당선작인 ‘구두 수선공’에서도 “구두 밑창에 겹겹이 달라붙은 길들”을 읽어내는 그의 시선은 작은 움직임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조금씩 넓혀가면서 “구두란 길과 걸음의 교차점”이라는 인식을 이끌어낸다.
그 외에도 정육점, 후미진 골목 등 변두리적 삶의 풍경들을 주로 보여주는 그의 시들은 조용하지만 단호한 칼날을 지니고 있다.
당선을 계기로 그 칼날이 더 예리하고 정확하게 삶의 어두운 환부를 베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나희덕, 이문재-
<무등일보>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 박문혁
아버지가 다리미 하나 들고 세상 한 가운데 섰다. 비록 세상이 알 굵은 사포처럼 거칠다 해도 창가에서 응원가를 불러주는 벽돌만한 금성 라디오 벗 삼아 묵묵히 하루를 다렸다. 산더미처럼 쌓인 일감은 손목이 아리도록 다림질을 강요했지만, 세상을 배우는 수업료라 여겨 한번 숙인 고개를 좀체 들지 않았다. 그리하여 점점 달인이 되어가던 아버지.
아버지는 다리미로 세상의 모든 근심을 다렸다. 장마 끝으로 축축해진 무등산 호랑이 가죽도 다리고, 학동과 지원동을 돌며 바다를 파는 목포댁의 생선 비린내도 다리고, 매번 귀가할 때마다 술에 취해 흥얼거리는 막노동꾼 김씨의 흘러간 노래도 다리고, 거리에서 붕어빵을 구워 파는 박씨의 희망도,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시각장애인 송씨의 하얀 지팡이도, 등록금 마련을 위해 연탄배달을 하는 대학생의 굵은 땀방울도 스팀을 다려 먹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유방암까지 다릴 수는 없었다.
이제 그 아버지가 3평 좁은 공간에서 홀로 늙어간다. 지금껏 구겨지고 이맛살 찌푸린 것들, 매끈하게 다려 모두 손님에게 돌려주고 마지막 남은 것이라곤 고작 몸에 걸친 한 벌 외로움 뿐. 하지만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아버지는 자신의 외로움을 다리지 못한다. 늦은 밤 나는 아버지가 벗어놓은 외로움을 빳빳하게 다려서 어머니 영정 옆에 쓸쩍 걸어놓는다.
미사일처럼 세워놓은 다리미가 어둠을 다림질하며 하늘로 솟아오를 듯.
심사평:
좋은 시는 참신한 발상과 세련된 말맛의 활용에서 온다. 참신한 발상은 전복적 상상력, 역발상, 반상합도 등의 언표로 요약되는 새로운 상상력을 뜻하고, 세련된 말맛의 활용은 활기 있고, 윤기 있고, 기품 있는 언어의 활용을 뜻한다. 물론 이런 뜻을 갖는 시를 쓰기는 쉽지 않다. 그것 자체로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전체의 진전된 심미적 의식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이것이 무등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1천500편이 넘는 시를 읽은 기본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일차 예심에 통과된 작품은 모두 10편이었다. 박문혁의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박월출의 '눈은 내리고 나는 걷고 걸어', 천순덕의 '가슴앓이', 김석윤의 '고비를 횡단하다', 박석준의 '은행 앞, 은행잎 뒹구는 여름날', 홍경화의 '허브향을 맡으면 속이 쓰리다', 박명남의 '떠나야 할 때', 김화정의 '코스모스와 여자', 장화숙의 '구절초 제국', 최영희의 '알흔섬'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 작품 중 최영희, 장화숙, 김화정, 박명남의 시는 정서의 범주가 크고 굵지 못하다는 점에서 맨 먼저 제외됐다. 이어 박석준의 시와 홍경화의 시도 감각이 새롭고 언어가 활달하다는 점에서는 관심을 끌었지만 그것 이상이 없다는 점에서 제외됐다. 곧바로 김석윤의 시도 제외시켰는데, 이 시 지니고 있는 건강한 노동의식을 나머지 시들이 받쳐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천순덕, 박월출, 박문혁의 시를 놓고 장고에 들어갔는데, 최종 당선작으로 선택된 작품은 박문혁의 시였다.
천순덕의 시가 제외된 까닭은 작품의 스케일이 작지도 했지만 발상이나 언어의 운용 면에서 좀더 기다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박월출의 시는 지속적으로 공부를 하며 자신의 의식과 언어를 닦아온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심사를 맡은 사람을 주저하게 했다. 맨 끝까지 남은 박문혁의 시도 모든 면에서 다 흡족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선작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는 장중한 정서를 바탕으로 건강한 노동의식 및 아버지로 대표되는 시간적 동일성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두루 주목이 되었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보내고 낙선자에게는 내일의 영광을 빈다.
-이은봉-
<전남일보>
대동여지도/조다윗
1.
내 영혼이 어느 산천 물줄기의 방점이라면 그 더딘 물소리가 끝없는 방물장수의 노래여도 좋겠다. 까마득한 옛 생각, 지도 하나를 그리는 밤, 고요의 헤진 발자국을 따라 걷다보면 어찌,들이고 산이고 섬인지 헤아릴 수 있을 까마는 능선과 능선이 만나는 무등산엔 소리그림자 짙다. 평야와 평야가 나란히 도사리는 푸른 꿈도 젖는다. 지칠 줄 모르고 다가갈 것만 같은 어지간히 어지러운 삶 예견이라도 하는 듯이, 휘감고 되돌아가야 할 그 길 꼭 잊지 말란 듯이 그래도 살별처럼 떨고 있는 간이역을 처연(凄然)의 뒤안길에서 기다리고 있다.
2.
'그 끝이 어느 경계 하나 끊고 살았으면 참 좋겠다.'라고, 생각하던 밤은 이토록 깊은 적막이다. 마치, 어머니의 가랑이처럼 길고 긴 포옹이다. 내 시의 근원지를 아직 잘 알지 못하겠으나, 늘 부려먹고 싶었던 어머니의 이름 대신 할미 가슴에 텃밭 한평 가꾸던 이유가 옛 지도의 성지처럼 신성함을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주 잠시 내 마음 속에도 초록의 활기가 꽃을 피우던날, '모든 길은 다시 하나의 길로 마주본다.'고 여우비가 산자와 죽은 자와 떠나간 자의 갈림길에서 등고선을 깊게 새겨두었다.
심사평:
예심을 거친 작품들을 읽어가는 동안 선자의 눈길을 끈 작품들은 아래 다섯 분의 시편들이었다.
'월세 방 있습니다'(김기훈) 외 6편의 작품들은 시상의 전개가 자연스러웠고 한 장 한 장 찍어 올린 언어의 정교함이 미려해 보였다. 반면 삶을 바라보는 치열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한 신인의 탄생이란 안정과 조화보다는 세계에 대한 신선한 꿈과 패기에 찬 도전의식 쪽에 보다 강한 의미 부여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모란꽃 마차' (박성진) 외 2편의 작품들은 전통적인 한국 서정시의 계보를 생각게 하는 작품이었다. 서정이 사라진 시대에 감정의 선율을 자연 속의 풍경들과 견주어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은 미덕이지만 이 작품 역시 신인이 지녀야 할 꿈과 패기의 차원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무늬들 (박시원)외 2편의 작품들은 꼼꼼하게 교직된 언어의 조각보를 바라보는 느낌이 있었다. 전통적인 여성 수공업의 세계에 현실의 삶을 투영하려는 노력은 소중하지만 보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선자의 최종적인 관심을 끈 작품은 '선운사 해우소 옆 홍매화' (정도전)외 3편과 '대동여지도' (조다윗) 외 5편이었다. 두 분의 작품들은 각각의 개성들이 차분하게 살아 숨쉬는 장점들을 지니고 있었다.
정도전의 '선운사 해우소 옆 홍매화'는 갓 핀 홍매화의 선선한 모습을 붙박이장의 문틈을 비집고 나오는 외투 깃과 자연스런 연결로 표현하고 있다. 꽃의 개화 속에서 낡은 외투. 삶의 개화를 꿈꾸는 시인의 눈길이 비범하지 않은 것이다.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든 것들을 꽃으로 바라보고 싶은 시인의 마음은 긍정적인 힘으로 세계의 진보에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다윗의 '대동여지도'는 언어를 다루는 시인의 힘이 우직하게 느껴졌다. 세계의 핵심에 정공법으로 접근하려는 이러한 정직한 힘은 언어의 충돌이나 지적인 교란에 전념하는 요즘의 신인들의 작품들에 비해서 상대적인 신뢰감을 주는 것이었다. 향후 그가 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삶을 응시하고 세계의 순정한 꿈을 위한 서정성의 확보에 노력한다면 그가 한 신예작가로서 충분한 자기 목소리를 지닐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응모한 시편들이 일정한 수준을 균등하게 유지하고 있는 점을 상대적 우위로 여겨 최종 당선작을 '대동여지도'로 결정하였다. 한국 현대시를 위한 웅장하고 섬세한 소리결을 지닌 귀한 범종으로 거듭 태어나길 바란다.
-곽재구-
<전북일보>
오리떼의 겨울/이지현
강 위에 오리가 머리를 숙였다 올린다
노란 부리로 쪼아낸 물방울은 베틀을 돌리지 않았는데도
모퉁이에서 가운데로 물결을 만들어간다
물결이 엉키지 않도록
휘휘 발 저어 옮기는 오리들,
혼자서는 저 넓은 강을 물고 날아오를 수 없다고
함께 강을 담아갈 보자기를 짜고 있는 것이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서로의 날갯소리를 엮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코와 코를 매듭지을 수 있다는 것을
결국 삶의 보자기는 혼자 짜낼 수 없다는 것을
오리떼가 함께 날아 오를 때 알았다
살얼음이 발목을 조여와도
강의 끝자락을 팽팽히 잡아당기는 오리떼,
놓고 가는 건 없는지 막바지 점검을 끝낸 후
세상 바깥으로 일제히 날아 오른다
세상 안쪽으로 폭설이 쏟아진다
심사평:
시대는 참으로 수상하다. 사람됨의 가치와 삶의 의미가 물질의 위력과 현실 의제에 밀려나는 형국이니 어찌 수상타 하지 않으리오. 사람됨의 최소한의 덕목들이 정신의 가치로 승화되지 못하는 시대는 암울하다. 정신·문화적 가치가 황폐한 시대일수록 이를 안타까워하고 이를 정신력으로 복원시켜야 한다는 욕구는 더 뜨거워지는 것인가?
올해 신춘문예 시부문 응모작품 수가 모두 1351편에 이르렀다. 양적인 수확에서 기록적이며, 각 작품들이 드러내고자 하는 시정신의 치열성에서도 기대에 값하였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모두 10여분의 응모자들이 투고한 30여 편이었다. 이희정의 ‘기억의 성지’는 시적 완결성에서는 일정한 구성력을 확보하고 있으나 세계를 보는 안목에서 당선작으로 밀기에는 미흡하다는 데서, 원창훈의 ‘FTA’는 현실을 조응해 내고 이를 시적 어법으로 형상화하는 시력은 확인할 수 있으나 전체적인 시적 긴장도가 처진다는 데서, 이혜숙의 ‘빌딩’은 소재가 주는 비인간성의 측면을 예리하게 잡아내고 있으나 시정신의 참신함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데서 심사자들의 선택을 망설이게 했다.
마지막까지 남은 이지현의 ‘오리떼의 겨울’은 일단 정통적인 시수업의 흔적을 느끼게 했다는 데서 안정감을 주었다. 삶의 진정성을 담아내기 위해 구축해 내는 이미지들이 여타 응모작들에 비해서 참신하였으며, 소재를 응시하는 서정으로 시의 의미 맥락을 담아내는 솜씨를 인정하면서 최종 당선작으로 삼았다. ‘함께 강을 담아갈 보자기를 짜고 있는 것이다’나 ‘강의 끝자락을 팽팽히 잡아당기는’ 등의 아름다운 의미나 참신한 표현은 시 수업을 희망하는 이들의 귀감이 될 만하였다. 더욱 분발하여 더 큰 시업의 성취를 기대한다.
사족 하나. 응모자들이 서너 편의 응모작 중에서 대표작으로 올린 시보다 그 다음 장의 시들에 호감이 가는 시가 많았다. 야구선수가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홈런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시도 그럴 것이다.
-정양, 이동희-
<경인일보>
꽃신 외 1편 / 김소연
달이 붓는다
가지가 휜다
일터에서 돌아온 어머니
발 매만지면
굳은살 갈라진 발바닥에서
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 들린다
어머니 얼굴에
꽃 지고
단풍마저 떨어져
잔가지들만
힘없이 흘러내린다
새벽녘
새근대는 어머니의
숨소리에서
낙엽 쓸어내는 소리 들린다
숨죽이면
눈발이 날린다
어머니가 벗어놓은
구겨진 신발 위로
새순 같은
새하얀 눈꽃이 핀다
눈부신 꽃신이 된다
비 / 김소연
빗방울이 소년의 얼굴을 때린다
자전거 바퀴가 천천히 구르고 어깨를 움츠린
소년의 등 뒤 비닐 덮힌 신문지 위로
빗방울이 쌓인다
새벽의 푸른 발등을 한 바퀴 돌아
소년이 반지하 구들장 위에 신발을 얹으면
늘 기침하는 어머니 갈라진 숨소리, 소년을 마중한다
살가죽만 늘어진 마른 젖가슴에 얼굴을 묻으면
어머니 가슴까지 축축이 멍들이는 시퍼런 빗물
소년은 엊저녁 남은 찬밥을 물에 말아
후루룩 마신후 다시
흥건히 젖은 신발에 발을 담근다
우산도 없이 뛰는 소년의 등 뒤에서
책가방이 자꾸만 넘어질 듯 소년을 떠민다
빗방울은 사정없이 소년의 얼굴을 밟는다
심사평:
'경제'라는 말의 위력에 비해 '양심'이라는 말의 힘은 너무도 미약해 보이는 것이 오늘날의 상황이다. 경제가 아량을 베풀어 셋방이라도 살게 해줘야 양심이 깃들 곳이 있게 된 세상이다. 하지만 경제는 아무리 먹고 마셔도 배고픈 신화 속의 괴물처럼 만족을 모른다. 그 괴물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미약하나마 양심의 힘이 절실히 필요하다.
시다운 시의 징표 가운데 하나는 얼마나 시에 양심이 살아 있느냐이다. 시 쓰기 자체가 살아가는 의미 찾기와 깊이 연관되는 것이라면 그 의미 찾기의 진실성 여부가 양심의 문제로 나타난다. 그것이 돈이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돈벌이와 무관하게 시를 읽고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 땅에 시가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고 신춘문예의 수많은 투고작 또한 희망의 한 모습이다.
모두 200여 명의 투고자 가운데 마지막까지 검토의 대상이 된 시를 보낸 이는 이문 신지영 심명수 김기훈 김소연씨 등이다. 이문의 '리딩 로드'는 발랄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언어구사가 돋보였는데 시상의 초점이 잘 모이지 않는 것이 흠이었다. '그래서 어떻다는 것이야?'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주제 구현에 좀더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있겠다. 신지영의 '열섬'은 시적 형상을 구축하는 저력이 배어 있는 시이다. 하지만 투고작 세 편만으로는 시인으로서의 역량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심명수의 '내 책상 위의 포도 한 알 구를 때'는 상상 자체가 신선하고 재미있는 시이다. 사소한 소재로도 얼마든지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함께 투고한 시들이 이 시를 받쳐주지 못하였다.
김기훈의 '월세 방 있습니다'는 가난에 찌들지 않고 그것을 일종의 동화적 상상력으로 날려버리는 시이다. 무거움에 대해 가벼움으로 대응하는 발상이 신선한 시이다. 한편 김소연의 '꽃신'과 '비'도 가난한 삶의 체험을 우려낸 시인데 소박한 언어 속에 속 깊은 마음이 녹아들어 있다. 마지막 두 사람의 시에 심사에 임한 두 사람은 오래 눈길을 주었는데 결국 '소박한 언어 속의 속 깊은 마음'으로 저울추가 기울었다. 잔뜩 화장한 시가 유행하는 풍조에 견주어 중요한 미덕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빈다.
-장석주, 최두석-
<강원일보>
소라의 집 / 김정임
외포리 뻘밭 소라의 집을 보셨나요
굵은 밧줄 한 개씩 기둥처럼 세워서
수 백 개 다닥다닥 붙은 소라의 빈 집들
지금은 선홍빛 노을만 그물질하고 있어요
빈집의 적막이 굴뚝의 연기처럼 피어올라
밀물대신 갯내 나는 뻘밭을 메워가고 있어요
소라의 그물망을 드넓은 바다 어장에 던져두면
호기심 많은 쭈꾸미가 소라의 빈 집으로 스며든다 지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능소화빛으로 색칠한 대문을 열고
미로같이 꾸불꾸불한 계단을 내려갔을 테지요
발자국 소리가 메아리 되어 울리는
아득하고 속이 깊은 방으로 스며들어
제 꿈을 익히곤 했을 소라의 집
간간이 파도 소리는 열어 둔 창으로 들어 왔다가
꿈의 한 가운데를 현처럼 긋고 나가곤 했겠지요
누군가를 기다리듯 대문 활짝 열어놓은
소라의 빈 집이 나를 자꾸만 끌어 당겨요
제 몸을 던져 꿈을 익혀가던 쭈꾸미처럼,
꿈은 꿈꿀 때 가장 빛나는 순간이 아니던가요
심사평:
예심을 거쳐 본심으로 올라온 열일곱 분의 응모작 가운데 마지막까지 논의의 대상이 된 것은 권혁찬씨의 ‘노트북’ 외4편과 김정임씨의 ‘소라의집’ 외 4편이었다.
권혁찬씨의 작품들은 일정한 문학적 수준을 유지한다. 주제를 형상화하는 능력이 있고 언어의 선택과 배치에 공을 들인 문체에서 만만치 않은 문학적 역량이 느껴진다.
선이 굵고 리듬에도 탄력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볼때 산문적으로 읽힌다.
시는 확산의 문법이 아니라 응축의 문법이고 생략의 문법이면서 여백의 문법이다.
언어를 최소화하는 과정 뒤에 남는 광채나는 보석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시들이 좀더 정제되고 표현의 광채를 획득하기 바란다.�
김정임씨의 시는 단아하다 절제에서 우러나오는 응축의 힘이있고 활달한 어조는 아니지만 작품에서 진정성이 느껴진다. 감정의 과장없이 조심스럽게 망설이듯 전개되는 그의 시들은 자연스럽다. 그리고 깊이 각인되는 예리한 이미지들은 그의 시의 독특함이자 매력이다.
당선작 ‘소라의집’에서확인 되듯이 노련한 장인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신인에게 요구되는 패기나 대담함 출렁거림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의 당선을 축하하면서 그의 정진을 기대해 본다.
-이영춘, 최승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