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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오리엔탈리즘> 에드워드 사이드

by 바닷가소나무 2006. 12. 5.

독서|우리 시대의 명저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권희정 평설위원|상명 사대 부속 여고 철학 교사 

 

"오리엔탈리즘을 논하고 그것을 분석할 때 대충 그 출발점을 18세기말로 잡는다면,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을 취급하기 위한 - 동양에 관하여 무엇을 서술하거나, 동양에 관한 견해에 권위를 부여하거나 동양을 묘사하거나 강의하거나 또는 그곳에 식민지를 세우거나 통치하기 위한 - 동업 조합적인 제도로 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위압하기 위한 서양의 스타일이다. "

 

 세계 지도를 펼쳐 보면 미국은 우리 나라의 동쪽에, 유럽은 서쪽에 위치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미국을 가리켜 ‘동방의 나라’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 나라가 그리니치 천문대를 중심으로 결정된 경도와 표준시에 따라 극동(Far East) 국가로 분류될 뿐이다.

그럼 혹시 우리가 ‘오리엔탈’이라는 단어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단언하건대 ‘오리엔탈’은 분명 동쪽을 의미하는 단어가 맞다. 하지만 ‘오리엔탈리즘’은 단순하게 지리적 방향을 가리키는 개념이 아니라 유럽 인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해가 뜨는 곳’, 곧 동방 지역을 뜻한다. 본래는 이집트·시리아·터키 등 근동(유럽에서 보아, 가까운 동양의 여러 나라) 지역만을 지칭했으나, 지금은 유럽의 동쪽에 있는 모든 지역을 아우르는 말이 되었다. 사실상 오늘날 동양과 동의어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오리엔탈리즘은 무엇일까? 원래 그것은 유럽 예술 사조의 한 갈래였다. 18세기 무렵 유럽 상류 사회에서는 중국·터키 등 동양 문화의 한 요소를 미술·음악·건축 등에 도입하는 풍조가 유행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 낯선 것이나 이국적인 것에 대한 유럽 사람들의 호기심이 ‘동방 취미’로서 오리엔탈리즘을 형성했다. 그렇기 때문에 오리엔탈리즘은 어느 특정 학문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언어학·고고학·인류학·역사학·사회학·지리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 그 뿐 아니라 신화·문학·회화·음악·영화 등의 예술 분야에서도 표현되고, 현실의 정치·경제·군사 제도와 정책에도 걸쳐 있는 매우 종합적인 학문이다.

그 뒤 유럽의 많은 학자들은 아테네의 민주주의와 페르시아의 전체주의를 구별 짓기도 하고, 오리엔트를 야만적인 세계, 무지몽매한 세계로 간주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서양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논리적인데 반해, 동양은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이며 신비적이라는 이분법적인 발상까지 낳았다. 곧 서구 지식인들은 광범위한 분야에 걸친 문화와 제도 안에 보이지 않게 서양 우월주의를 숨겨 둔 것이다.

1935년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미국의 비평가인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는 1978년 ꡔ오리엔탈리즘ꡕ을 출간해 이러한 서양 학문과 예술에 배어 있는 서구 중심주의와 우월주의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사이드가 말하는 오리엔탈리즘이란 ‘서양인들이 동양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또한 그 이해 방식들이 서로서로 얽혀서 거대한 틀을 이루는 총체적인 네트워크를 의미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이 동양을 지배하는 스타일로, 동양과 서양은 지리적 방향이나 문화적 차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서양이 동양을 지배하고 그 구조를 재생산하는 경계 짓기의 용어일 뿐이라는 게 사이드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사이드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푸코(M. P. Foucault, 1926~1984)의 이론인 ‘담론의 계보학’을 빌려 왔다. 사전적 의미로의 담론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논의함’이라는 뜻으로, 인간이 사물을 이해할 때 사용하는 기호와 의미 체계를 가리킨다. 따라서 담론의 계보학은 담론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밝히는 학문이다.

예를 들어 청초하게 피어 있는 장미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해 그 느낌과 생각을 시로 옮긴다고 상상해 보자. ‘장미’는 대상이고,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며, ‘시’는 의미 체계로서의 담론이다. 우리는 장미를 실제로 봤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것을 시로 쓴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담론’의 관점에서 보면, 장미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시 때문에 우리는 장미가 아름답다고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를 떠올려 보자. 남자가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면 으레 장미꽃을 건네는데, 여기서 장미는 사랑의 꽃이고 우리는 그 꽃을 아름다운 대상으로 받아들인다. 만약 각종 방송 매체에서 장미를, 인간을 괴롭히는 괴물로 묘사한다면 장미는 사랑이 아니라 공포의 상징물로 우리 뇌리 속에 기억될 것이다. 이처럼 기호들의 의미체계가 사물의 특징을 형성하는 과정을 분석하는 것이 담론의 계보학이다.

사이드는 이러한 담론의 계보학을 오리엔탈리즘이란 용어에도 적용했다. 오리엔탈리즘도 동양의 실제 현실과 무관하게 서양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허구의 동양일 뿐이다.동양 사회를 지배하고픈 서양 사람들의 열망 때문에 서양 학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서양에 비해 열등한 동양’의 이미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서양의 눈에 비친 근대 이전의 동양은 단편적이고 이중적이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동양은 페르시아였고, 중세 때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오늘날의 터키)을 비롯한 이슬람 세력이었다. 서양은 이들을 보며 경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르기 때문에 공포를 느꼈다. 그 뒤 서양 사회가 근대화되고 제국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동양의 범위는 아시아 전역으로 넓혀졌다. 그리고 동양에 대한 이중적이고 단편적인 인상을 이론으로 정립해 과학과 인문학으로 체계화했다. 이때 서양은 제국주의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동양의 여러 특징 가운데 전근대적인 사회상과 후진성을 동양의 본질적인 특징으로 부각시켰다. 동양은 스스로 발전할 수 없는 세계이고 서양의 힘과 지식을 빌려 근대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믿음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학문으로 체계화되었고, 결국 국가의 정책으로 받아들여져 제국주의적 지배를 정당화시켰다.

이를테면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이 발생해 온 과정과 의도를 되짚어 보면서 서구 중심주의를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합리성과 객관성으로 포장된 오리엔탈리즘이 제국주의라는 정치적 목적 때문에 동양에 대한 편견을 재생산하고 문화적 다양성과 상대주의를 수용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사이드의 비판에도 한계는 있다. 그가 분석한 서양은 르네상스 이후의 영국·프랑스·미국 정도로 한정되어 있고, 그가 지목한 동양 세계도 이슬람 문화권으로 제한되어 있다. 또 최근에는 제3세계도 정치·경제·문화가 발달되면서, 합리주의를 앞세웠던 서양 문화를 보완하고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데도 이러한 부분은 반영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수술과 약물 중심의 서양 의학을 반성하면서, 대체 의학이 등장한 이유나 서양의 개인주의와 소비 문화를 반성하게 하는 불교 열풍 등은 언급되지 않았다. 물론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을 출판했던 1970년대의 상황을 고려하면 다소 성급한 판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이드의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동안 우리 나라를 비롯한 제3세계의 근대화는 오리엔탈리즘의 실현을 목표로 해 왔기 때문이다. 서구의 선진 문물과 제도를 따라잡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왔던 우리에게 서양의 학문과 문화를 수용할 때마다 항상 경계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더 읽어 봅시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문화와 제국주의>·<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


권희정(상명대 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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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고교 독서평설>(2005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출처 : 목련꽃이 질때
글쓴이 : 어린왕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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