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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조의 마을 장화리를 가다 2024. 8. 31.
아내와 나 / 이생진 아내와 나 사이_이생진(1929~)​​아내는 76이고나는 80입니다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네 기다리는 것입니다​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서로 모르는 사이가서로 알아 가며 살다가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인생?철학?종교?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이생진 시인출생 1929년 10월 1일, 충남 서산시[출처] 시삼백687... 2024. 6. 25.
아버지의 눈물 / 이채 아버지의 눈물 / 이채 남자로 태어나 한평생 멋지게 살고 싶었다.옳은 것은 옳다고 말하고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하며떳떳하게 정의롭게사나이답게 보란 듯이 살고 싶었다.​남자보다 강한 것이 아버지라 했던가나 하나만을 의지하며 살아온 아내와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위해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하지 못하고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세상살이더라오늘이 어제와 같을지라도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란 희망으로하루를 걸어온 길 끝에서피곤한 밤손님을 비추는 달빛 아래쓴 소주잔를 기울이면소주보다 더 쓴 것이 인생살이더라​변변한 옷 한 벌 없어도번듯한 집 한 채 없어도내 몸 같은 아내와금쪽같은 자식을 위해이 한 몸 던질 각오로 살아온 세월애당초 사치스런 자존심은 버린지 오래구나하늘을 보면 생각이 많고땅을 보면 마음이.. 2024. 6. 25.
뼈저린 꿈에서만 / 전봉건(1928-1988,60세) 뼈저린 꿈에서만 / 전봉건(1928-1988,60세)  그리라 하면 그리겠습니다. 개울물에 어리는 풀포기 하나 개울 속에 빛나는 돌멩이 하나 그렇습니다 고향의 것이라면 무엇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지금도 똑똑하게 틀리는 일 없이 얼마든지 그리겠습니다.  말을 하라면 말을 하겠습니다. 우물가에 늘어선 미루나무는 여섯 그루 우물 속에 노니는 큰 붕어도 여섯 마리 그렇습니다 고향이 일이라면 무엇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지금도 똑똑하게 틀리는 일 없이 얼마든지 말하겠습니다.  마당 끝 홰나무 아래로 삶은 강냉이 한 바가지 드시고 나를 찾으시던 어머님의 모습. 가만히 옮기시던 그 발걸음 하나하나 조용히 웃으시던 그 얼굴의 빛 무늬 하나하나 나는 지금도 말하고 그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한 가지만은 .. 2024. 6.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