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있는 시

염 / 김청수

바닷가소나무 2015. 1. 9. 16:53

 

 

 

 

  / 김청수

 

 

 

죽은 친구를 염한 적이 있다

그때 난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밭에 가던 길이었다

돌담 너머 돌이 엄마 통곡 소리를 듣고

나는 돌이가 죽었다고 직감했다

 

돌이는 이름 그대로 머리가 크고

돌망치를 가진 이마를 가지고 있었다

이웃에 흑백텔레비전이 들어오던 날 돌이와 구경을 갔다

형들은 돌이를 보고 축담에 있던 넓고 커다란 돌을 이마로 깨면

방으로 들여보내 준다고 하여 돌이는 그 돌을 이마로 깼다

나는 놀라 돌이 이마를 살폈는데 피는 나지 않았다

그때 그 시간 텔레비전에는 김일 선수가 레슬링을 하고 있었다

 

돌이는 일 학년도 다 다니지 못하고 소아마비로 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

돌이의 동생도 똑같은 병을 앓다 일찍 죽었다

돌이 부모님은 돌이를 업고 전국 용하다는 병원은 다 다녔다

하지만 고칠 수 없는 그 병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점점 다리에 힘이 없고 약해져 바깥출입을 할 수 없었고

나는 학교 갔다 오면 돌이한테 책도 읽어주고 ㄱㄴ……글도 가르쳐주었다

 

돌이네 집은 떡방앗간을 했다

가마솥에는 늘 콩을 삶아 두부를 만들었다

내가 돌이와 놀아주고 돌아올 땐 비지를 몇 덩이 얻어오면

할머니는 김치를 넣고 비지찌개를 만들어 주셨다

어느 날 돌이가 방에서 오줌이 마렵다고 불러 쪽문을 열려고

가마솥 뚜껑에 발을 디뎠다가 솥뚜껑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끓고 있던 솥 안으로 내 발이 빠졌다

순간 아득했다 나는 울면서

훌러덩 벗겨진 발등의 껍질을 참담한 마음으로 보았다

 

나는 넋 빠진 돌이 엄마를 겨우 일으켜 세워

몸이 더 굳기 전 돌이를 묶어야 한다고, 장롱 어딘가에서 찾아 낸 광목으로

어릴 때 할아버지 할머니 염하는 걸 본 그대로 돌이를 묶었다

돌이가 하늘나라로 갈 시간, 마당가 담장 위로

매화꽃잎이 바람에 흔들려 흰 눈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시인정신 2014년 가을호

  

 

김청수 : 2005년 시집 ?개실마을에 눈이 오면?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차 한 잔 하실래요? ?생의 무게를 저울로 달까? ?무화과나무가 있는 여관? 출간. 2014년 계간지 [시와 사람] 봄호,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