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 / 김청수
염 / 김청수
죽은 친구를 염한 적이 있다
그때 난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밭에 가던 길이었다
돌담 너머 돌이 엄마 통곡 소리를 듣고
나는 돌이가 죽었다고 직감했다
돌이는 이름 그대로 머리가 크고
돌망치를 가진 이마를 가지고 있었다
이웃에 흑백텔레비전이 들어오던 날 돌이와 구경을 갔다
형들은 돌이를 보고 축담에 있던 넓고 커다란 돌을 이마로 깨면
방으로 들여보내 준다고 하여 돌이는 그 돌을 이마로 깼다
나는 놀라 돌이 이마를 살폈는데 피는 나지 않았다
그때 그 시간 텔레비전에는 김일 선수가 레슬링을 하고 있었다
돌이는 일 학년도 다 다니지 못하고 소아마비로 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
돌이의 동생도 똑같은 병을 앓다 일찍 죽었다
돌이 부모님은 돌이를 업고 전국 용하다는 병원은 다 다녔다
하지만 고칠 수 없는 그 병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점점 다리에 힘이 없고 약해져 바깥출입을 할 수 없었고
나는 학교 갔다 오면 돌이한테 책도 읽어주고 ㄱㄴ……글도 가르쳐주었다
돌이네 집은 떡방앗간을 했다
가마솥에는 늘 콩을 삶아 두부를 만들었다
내가 돌이와 놀아주고 돌아올 땐 비지를 몇 덩이 얻어오면
할머니는 김치를 넣고 비지찌개를 만들어 주셨다
어느 날 돌이가 방에서 오줌이 마렵다고 불러 쪽문을 열려고
가마솥 뚜껑에 발을 디뎠다가 솥뚜껑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끓고 있던 솥 안으로 내 발이 빠졌다
순간 아득했다 나는 울면서
훌러덩 벗겨진 발등의 껍질을 참담한 마음으로 보았다
나는 넋 빠진 돌이 엄마를 겨우 일으켜 세워
몸이 더 굳기 전 돌이를 묶어야 한다고, 장롱 어딘가에서 찾아 낸 광목으로
어릴 때 할아버지 할머니 염하는 걸 본 그대로 돌이를 묶었다
돌이가 하늘나라로 갈 시간, 마당가 담장 위로
매화꽃잎이 바람에 흔들려 흰 눈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시인정신 2014년 가을호
김청수 : 2005년 시집 ?개실마을에 눈이 오면?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차 한 잔 하실래요? ?생의 무게를 저울로 달까? ?무화과나무가 있는 여관? 출간. 2014년 계간지 [시와 사람] 봄호,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