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있는 시
드럼 세탁기 / 권 성 훈
바닷가소나무
2014. 11. 29. 09:02
드럼 세탁기 / 권 성 훈
여름 베란다 한 쪽
외출에서 돌아온 날들이 뒤섞여있다
일주일도 넘은 쉰내 나는 아버지와
어젯밤 외박을 하고 온 비린 새엄마와
오늘 월경을 시작한 풋내기 누나
어디서 왔는지 묻지 않아
팔이 사타구니 속에 사타구니가 가슴 사이로
아랫도리가 윗도리 속에 윗도리가 아랫도리 사이로
서로 얽히고설킨 꿈처럼
네가 내가 되어
내게서 네가 나오고
나에게 우리가 들어오기도 하는
안쪽과 바깥쪽이 있지만 없는 뫼비우스 띠
서둘러 돌아와서 돌아가
멈칫 돌아온 길을 돌아보며
다시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간다
몸과 몸을 섞으며
거리와 거리를 섞으며
시간과 시간을 섞으며
쉬었다 돌아가다 돌아와
그것들이 재미있다며 왔던 곳으로 뒤돌아간다
삑삑 소리를 내며 피범벅이 된 채
가끔 물처럼 긴 호스로 연결된
불이문을 빠져나가기도 하는.
- 유심 2013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