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있는 시
궁리 / 배한봉
바닷가소나무
2014. 9. 29. 14:21
용추계곡 숲길에서 내 운동화 한 짝만 한 어린 산토끼와 만났다
좁은 길 한 가운데 앉아 나를 바라보는 토끼
나도 꼼짝 못하고 토끼만 바라보는 시간
어린 토끼가 가던 길 어서 마저 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시간
가볍게 바람을 쐰 뒤 얼른 돌아가야 하는, 내 사정 따위는 아랑곳없다는
듯 보드랍게 토끼의 잿빛 털을 쓰다듬고 있는,
바람의 저 천만 개 가느다란 손가락
허공을 유영하는 멸치 떼 같은 은빛 바람의 손가락
지상의 파란을 모두 기억하는 바람도 어린 토끼 놀랄까 봐 그런 자세로
한참을 궁리하는 시간
*『유심』11~12월호, 2011